[343호] 한국인의 오리엔탈리즘

(1)왜 문제인가?

2018-03-23     박홍규

최근 어느 문예지와 논문집에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글을 썼다가 퇴자를 맞았다. D. H. 로렌스의 여러 소설에 비서양을 터무니없이 비하하고 관능적으로 신비화하여 사실을 왜곡 날조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비판한 글이었다. 논문집 심사는 세 사람이 했는데 한 사람은 너무나도 새로운 주장이라고 극찬한 반면 두 사람은 영문학 거장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하기가 두렵다.

20년도 더 전에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여 출판사에 보냈을 때 몇 번이나 퇴자를 맞은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지금은 사이드의 책이 여럿 번역되었지만 그 때는 책의 전문가라는 출판인 사이에서도

사이드나 오리엔탈리즘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문학예술가나 교수들 사이에서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다. 반면 D. H. 로렌스를 비롯한 서양의 문학예술가나 학자들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어떤 비판도 용서하지 않을 정도로 강고하다. 제국에서 살았던 그들이기에 그들의 작품에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데도 그렇게 말하면 화를 낸다. 서양에서는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부터 이미 그런 반성이 행해졌는데도 그렇다. 마치 옛날 중국에서는 유교 말고도 다른 사상이 존재했고 유교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음에도 조선에서는 유교에 대한 어떤 비판도 하용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이는 우리가 일본인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를 비하하고 멸시하여 왜곡 날조한 것에 분노하면서도 서양인이 비서양인을 똑같이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분노하면 안 된다고 하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대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이다. 게다가 이는 그 서양인처럼 우리를 제외한 비서양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으로도 발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마치 서양인과 같은 수준과 지위에 오른 양 으스댄다. 그래서 D. H. 로렌스를 비롯한 영미독불 작가들을 마치 우리 작가처럼 여기고 그들 작품을 고전으로 신주 모시듯 한다. 이런 태도는 대학의 수업이나 언론, 인터넷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서양인인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김치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의 의식주는 서양의 것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도 대체로 서양의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지난 20년간 더욱 강화되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스럽다. 그 중요한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큰 도구인 영어가 그동안 한국에서 거의 공용어 수준에 이를 정도로 확대되고 심화되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양 중심인 TV와 인터넷 등의 모든 뉴스와 정보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을 통해 우리를 전체주의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오리엔탈리즘은 19-20세기 서양의 그것보다 더욱 더 노골적이고 더욱 더 관능적이다.

야만은 관능으로 포장될 경우 우리의 본능을 대리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원주민의 나체가 화면 가득히 끝없이 비춰지는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오지 탐험의 구경꺼리가 모든 비서양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TV로 전국에 중계되고 인터넷으로 재생되는 반면 서양은 그런 비서양의 미개와 야만과 반대되는 지성과 문화의 심볼로 각인된다.

그래서 서양, 특히 미국은 여전히 숭상대상인 우리의 신이다. 한국의 수재들이 입학하고자 꿈꾸는 하버드대학의 교수 책이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몇 배나 더 팔리고 한국에서 산 적도 없는 그 교수가 우리의 모든 고민을 풀어주는 신의 대리인인 듯 엄청난 강연료와 인세를 지불하여 초청한다. 좌파나 우파나, 보수나 진보나, 경제파나 생태파나 모두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명과 야만, 서양과 비서양, 제국과 식민지의 불평등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오리엔탈리즘은 한국 사회 내부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여 구조화한다. 그래서 극소수 강남이 지배하는 문명의 상층부는 뉴욕이나 LA의 상층부와 다름없이 문명 제국을 형성하고, 지방은 물론 비강남인 서울 대부분을 야만과 미개의 식민지를 삼는다. 그리고 그 아래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을 비롯한 가난에 찌든 야만의 비서양세계가 조작되고 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작한 서양 문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 철학, 문학 등으로부터 근대의 셰익스피어나 니체나 D. H. 로렌스까지 철저히 비판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인류의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라는 가치에 위배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오리엔탈리즘적 허위의 우상은 철저히 비판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