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재미있는 과학이야기] 통쾌한 방정식

2018-03-23     신현용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코너에서 “수학”이야기를 하려니 다소 어색하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은 서로 “우리가 남이가?”하니 과학 한마당 잔치에 수학이 끼어들어 노래 한 가락 뽑는 것도 용납될 듯싶다.

문제는, 수학이야기를“재미있게”하라 한다. 시인은 마법 같은 글 솜씨로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드러머는 신명나는 리듬비트로 듣는 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며, 조각가는 그 단단한 대리석을 깎아 보는 이의 넋을 빼앗던데, 수학자인 나는 수학으로 남을 울게 웃게 못하니 어찌하나? 그러나 깔아준 멍석이다. 수학자 이야기 한 토막, 수줍게 펼쳐보자.

18세기 한 세대를 풍미한 수학자 오일러(Leonhard Euler, 1707 ~ 1783)는 수학의 2,500년 역사 전체를 통틀어“최고의 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게다가 웬만한 물리학 교재에“오일러-라그랑쥬 방정식”등 그의 수학적 업적이 언급되는 것을 보니 이“과학”코너에 어느 정도는 어울릴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학자 대부분은 까칠하고 교만하다. 그들의 수학적 능력이나 업적으로 보아 그럴만하기도 하겠지만, 왠지 화성에서 온 외계인 같다. 푸근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일러는 안 그랬다. 지극히 자상하고 겸손하였다. 이는 대(大)수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이 결코 아닌데, 어찌 그랬을까?

오일러의 오른쪽 눈은 지나친 연구로 1730년 후반에 실명된다. 그의 초상화가 주로 왼쪽 얼굴을 보이는 이유이다. 한쪽 시력을 잃었어도 수학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나머지 왼쪽 눈에 무리가 갈 수 밖에 …. 급기야 1766년에는 그 눈마저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1783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그의 삶 마지막 17년 동안은 완전히 실명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 암흑의 기간에도 그는 불평은커녕 조용히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그의 수학적 진리를 위한 헌신은 그에게 닥친 상황에 당당히 맞서게 하였다. 육체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의 상상력은 더 예민하여 졌고, 그 결과 그의 수학적 눈은 더 밝아져 그 아름다운 수학을 발견하였다. 사실, 오일러는 나머지 눈도 시력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 그때부터 두 눈을 잃은 상황에서 수학을 하는 방법을 미리 익혔다. 치열한 삶이었다. 어린 아이를 극진히도 좋아한 오일러는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그 중 여덟 자녀가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여덟 자녀를 가슴에 묻은 아빠였다. 아픈 삶이었다.

오일러의 치열하고 아픈 삶은 그로 하여금 따뜻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했을 것 같다. 그는 수학을 할 때에도 그렇게 소탈하였다. 그의 명성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문제와 계산이라도 제자나 이웃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기꺼이 진지하게 임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몇몇 수학적 발견들은 실은 그의 이름으로 돌려져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유명한 “골드바흐의 추측”은 그 중의 하나이다. 골드바흐는 오일러에게 편지를 보내 “5 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이라고 추측하였다. 이에 오일러는 “2 보다 큰 모든 정수가 두 소수의 합이라면 그 추측이 옳다”고 답하였다. 이러니 골드바흐의 추측은 오일러의 추측이라고 하여야 옳다. 분명, 오일러가 이 추측은 훗날에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불리게 될 것을 알았더라도 크게 기뻐하였을 게다.

오일러는 수많은 식을 남겼다. 하나같이 수학의 보석들이지만 그 중 하나만을 소개한다. 수학책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지만 통쾌한 방정식이다. 무신론자인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는 러시아 황제 앞에서 “신이 없음”을 장황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디드로는 유명한 수학자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듣고 싶어 했다. 그의 지극히 냉소적인 눈과 입의 모습이 상상된다. 오일러는 디드로 앞에 나아가 장엄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입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합니다. 자, 대답하여 보세요. 수학에 문외한인 디드로는 이 심오해보이는 이 방정식에 기가 죽고, 심한 수모를 느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수학을 아는 사람에겐 는 아무런 뜻이 없지만, 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통쾌한 방정식이었나 보다. 그 순하고 겸손한 오일러가 당신의 수학적 명성을 이렇게 추상같고 교만하게 이용한 전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