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 염치를 지켜주세요

2018-03-23     차기연 기자

지난 8월 22일, 종합편성채널(종편) TV조선에서는 우리학교와 경

인교대 학생들을 모집해 퀴즈 프로그램‘라이벌 퀴즈쇼 <반지원정대

>’를 녹화하려고 했다. 결국 양측 학생들 모두 출연이 어려워지면서

녹화가 성사되지는 않았으나, 종편 출연을 두고 우리학교 학우들 간

에 작은 논쟁이 벌어졌었다. 종편에 출연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 종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사

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거니와, 그 결과로 선

정된 사업자가 특정한 4개의 거대 신문사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거

대 신문사들이 언론으로서 가지는 영향력이 강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는 분명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떠한 정치적 색깔을 지녔는지에 상관없

이 펜의 힘이 한쪽에만 몰리는 것은 편향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

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종편에 반대하고 종편에 출연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게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편에 찬성하거나 별다른 반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있다. 종편의 존재로 일련의 이익을 얻어가는 측이다. 그들

은 종편에 출연하는 것에도 별다른 반감이 없다. 이 경우, 각 주체는

모두 스스로 마땅한 행위를 하고 있을 따름이니 그들이 마냥 잘못되

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행위의 근간은 매우 본능적이고 자연스

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종편의 존재로 피해를

입을 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배려해 주

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종편의 존재로 이익을 얻을 입장이 아님에도 종편에 별다른 반감을 가지

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시청자의 선택권이 넓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하고, 종편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예 무관심하기도 한 경우도 있으며, 그저 인터넷에서 배운‘좌파척결’을 목 놓아 외치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종편이 현재 너무나 미미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 괜한 확대해석으로 종편을 대하는 데에‘오버’하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중에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맨 마지막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종편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의 영향력이 당장 미미하다는 이유로 이 세태를 좌시하려 한다. 안일하다. 이

안일함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어마어마한 결말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융통성이라

는 말로 포장될 수 없다. 또, 그들은 종편에 대한 반감을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들이 ‘오버’하고 있다며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염치없다. 체제에 순응하는 일은 쉽고 편하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일은 어렵고 불편하다. 편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을 욕하는 것은 분명 염치 없는 일이다.

안일함과 태만함은 분명 그 자체로도 잘못이 된다. 특히 그로 인해 생겨나는 피해가 비단 자기 자신에게만 그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잘못의 정도는 더욱 크다. 상황이 이러한데, 안일함의 늪 속에서는 도리어 늪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깔끔한 체한다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종편이 잘못되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행동까지는 이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염치는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