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호] 우리는 믿는다, 우리의 후손을.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를 춥게 만든 것은 매서운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를 더욱 춥게 만든 것은 날씨 못지않게 차가웠던 정부의 난방통제정책이었다. 교원대에서도 온도통제는 물론 이거니와 10시에서 12시 사이에는 난방기 가동 자체를 통제하여 가동시킬 수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전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쉽게 접하던 소식은 아니었다. 우리는 풍요롭게 전기를 사용했고 그 한계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패턴이 점차 더 많은 전기를 요구하면서 전기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점까지 도달해버렸다. 물 걱정, 석유 걱정에 이어 우리는 전기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서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전기의 수요는 증가한 반면 이미 수명이 지나버린 핵발전소에서는 문제점들이 발견되어 전기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후화 된 핵발전소를 보완하고, 근래에 급격히 증가된 전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핵발전소를 신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얼마 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지면서 그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전기 공급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핵 발전은 꽤나 매력적인 에너지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핵 발전의 가장 큰 매력은 발전단가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값 비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인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 발전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핵 발전은 화력발전을 통해 나오는 부산물인 온실가스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청정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핵 발전은 우리들을 유혹한다. 우리는 이토록 강력한 핵의 유혹을 방사능 유출 사고의 위험성이라는 방어기재로 애써 잠재우려 한다. 하지만 방사능 유출 사고가 당신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정말 위험한 것인가?
비행기사고와 자동차 사고를 비교해보자. 비행기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자동차 사고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확률은 100%에 육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중 비행기사고를 걱정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반면에 자동차사고의 사망률은 비행기사고에 비해 굉장히 낮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일상생활 중에도 자동차사고에 대한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위험이란 이러한 것이다. 위험을 결정하는 요소는 두 가지이다. 그 위험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의 피해(D)와 실제로 그 위험이 발생할 확률(P)이다. 위험은 (D)와 (P)의 곱으로 이루어진다. 이 공식을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입해보자. 만약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D)의 최대값에 근접할 것이다. 이제 최종적인 위험을 구하려면 (D)값에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날 확률 (P)를 곱하면 된다. 그러나 (P)의 값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확률 (P)는 자동차 사고는 물론이거니와 비행기사고 및 기타 사고의 위험 확률에 비해 현저히 낮고, 그 값은 거의 0에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 위험규모 계산을 근거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입증한다.
원료의 가격을 통해 알아본 핵 발전의 발전 단가는 분명히 화석연료를 통한 발전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하지만 발전비용을 상정할 때에는 발전 단가 이외에도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첫째로 발전소 건립비용이다. 물론 화력발전소 등의 건립비용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건립비용만큼의 비용이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에는 단순히 건립비용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발전 사후 처리비용이 추가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남은 물질에는 방사성이 잔존한다. 이것이 노출되면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되므로 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이다. 방사성이 사라질 때 까지 오랜 기간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처리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처리장 부지 선정에서 부터 건립, 유지, 비용 등을 모두 상정한다면 원자력 발전은 더 이상 값싸고 저렴한 에너지가 아니다.
또한 핵 발전을 통해 온실가스의 감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에도 많은 허점이 포함되어 있다. 온실가스의 위험은 지금 당장이다. 당장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핵 발전을 추가 건립하자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핵발전소를 건립할 때에는 통상적으로 10년의 기간을 상정한다. 온실 가스 문제는 당장의 대책을 요하지 10년 후의 대책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실가스 저감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그 위험의 정도이다. 물론 핵 발전 기술은 상당히 완벽하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도 기술력을 통해 현저히 낮출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원전보다 우리나라의 원전이 안전한 것은 100%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전성이 상대적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상대적 안전성을 통해 안전의 절대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은 체르노빌의 원전을 보다 보완하고 안전성을 높여 건설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났다. 왜냐하면 기술이 안전성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시발은 인간의 실수들이 합쳐진 비극이었다. 완벽한 기술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 인간의 실수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기술이 완벽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핵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너무나 위험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지금 당장 우리사회가 핵 발전을 포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의 40%정도를 핵 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핵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기없이 생활하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시안적 시각에서 핵 발전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핵 발전의 단순한 유혹에 속아 넘어간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대단히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