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호] 과학 포경을 빙자한 상업 포경 반대한다
고래는 자원이기 이전에 생명
지난달 4일 정부는 파나마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에서 과학연구용 포경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각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맞닥뜨려 같은 달 17일 청와대 주례보고 자리에서 애초의 계획을 철회했음을 밝혔다. 이러한 정부가 벌인 13일의 해프닝은 포경 활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한 측과 멸종위기로부터 고래를 보호하려 한 환경단체들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고래가 살고 있었는데 특히 동해에는 멸치·정어리·고등어·오징어 등이 많아 비교적 많은 고래가 떼 지어 다녔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병합한 이후 동해에서 많은 고래를 잡아갔다. 일제시대에 일본 포경선이 우리나라에서 잡은 고래 수는 7천여 마리에 이른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 포경선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퇴직금으로 물려받은 포경선으로 근대적인 포경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매년 300~500마리의 고래가 잡혔고 10여 년이 지난 뒤에는 동해를 찾는 고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무분별한 포경활동으로 고래의 씨가 마를 위기에 처했다. 결국 국제포경위원회(IWC)는 1986년에 국제포경조약(ICRW)에 따라 밍크고래 등 12개 국제보호종에 대한 상업목적의 포경을 유예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국내의 상업 포경을 일체 금지해 일부 혼획된 고래만이 시장에 유통될 수 있게 되었다. 곧 동해의 어민들은 기존에 포경으로 얻었던 경제적 이익을 잃게 된 것이다.
△“고래 수와 어획량 간의 관계는 입증된 바 없다”
올해 정부는 과학·학술조사를 목표로 고래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과학 포경 시행 방침을 계획했다. 과학 포경이란 고래자원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어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지 등 과학목적을 위해 고래를 잡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27년이라는 포경 유예 기간 동안 고래 자원이 과도하게 축적되었고, 이 때문에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농림수산식품부는 “27년간의 포경 유예 이후 고래자원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국내 어업인들에게 고래에 의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국제포경위원회에 과학조사 계획을 제출할 것을 밝혔다. 실제로 동해의 주요 어족인 오징어는 그 어획량이 2005년 18만9천 톤에서 2010년 15만9천 톤으로 실제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한국동물보호연합·그린피스 등 각 시민단체 측은 “고래의 수와 어획량 간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며 과학 포경에 대한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또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대표적인 반포경 국가들도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 비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연근해에 분포한 고래자원 조사 평가 실시 중에 있으나 대부분 목시조사(눈으로 관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으로 어업 피해에 대한 조사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라며 현실적으로 고래의 수와 어획량 간의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정부의 과학 포경 재개 이유는 과학적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부 어업인들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측은 “일부 수산업계의 왜곡된 요구를 반영한 농수산 식품부의 어업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바라는 과학 포경이 고래를 잡아 죽여야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거셌다. 과학자들은 DNA 샘플링과 원격 모니터링의 시대에 고래를 죽여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IFAW(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 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의 자료에 따르면 샘플은 고래의 허물, 고래기름, 분변으로부터 수집할 수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고래가 숨구멍으로 내쉴 때 샘플을 채집하여 병원균 탐지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안 관찰과 각 개체의 사진, 음향 조사 등의 연구 기술로도 고래 개체수와 추세를 알아낼 수 있다.
△ 상업 포경, 실질적으로 형성될 우려 농후
환경단체들이 여러 이유를 들어 정부의 과학 포경 재개 방침을 비판하는 것은 과학 포경이 사실상의 상업 포경으로 비화되어 무분별한 포경이 진행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우려는 일본이 실제로 포경 행위를 과학으로 가장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포경을 하고 있다는 가까운 사례가 있어 신빙성이 있다. 실제로 그간 일본은 과학 포경을 명분으로 극히 일부분의 시료를 채취한 뒤 99% 이상의 고래 사체를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으로 국제 사회의 비탄을 받아 왔다.
더불어 한국이 이미 불법 포경과 혼획이 남발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도 고려가 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울산본부 측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불법 포경(illegal whaling)과 혼획(by-catch)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나라다. 여기에 고래고기를 사고 파는 시장이 ‘실질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형편이다”라며 과학 포경이 상업 포경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뜻을 비쳤다. 해양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고래 혼획 및 불법 포획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왔으며 2000년대에 걸쳐 한국 연안에서는 4722마리의 밍크고래가 혼획되었다. 현재 한국 연안에 남아 있는 밍크고래는 3000여 마리 뿐인 것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