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호/컬처노트] 달콤한 죽음과 고통스러운 삶, ‘Komm, süsser Tod(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 순간을 맞닥뜨린 적이 있는가? ▲발표 10분 전 날아간 발표 자료 ▲놓쳐버린 기차 ▲마감 기한이 코앞인데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은 과제 ▲이별의 순간. 우리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을 경험한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OST인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이 아름답기에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노래한다. 그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차분한 선율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삶의 온기를 위로하듯 다가온다.
◇ 고통 없는 종말의 순간,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은 가상의 생체 병기 ‘에반게리온’을 조종해 인류의 적 ‘사도’와 싸우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본질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작품은 ▲결핍 ▲사랑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통을 철학적으로 그려내며, 모두가 안고 있는 불안과 외로움을 드러낸다.
후반부에서 ‘인류보완계획’이 실행되자 모든 인류는 개별성을 잃고 오렌지빛 액체로 녹아내린다. 존재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절망적인 장면 위로 노래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흘러나온다. 잔혹한 영상 위에 얹힌 잔잔한 노래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남긴다. 비명인지 환희인지 알 수 없는 소리, 그리고 그 위를 덮는 부드러운 선율은 인류의 종말이 주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 종말 속에서 들려오는 평온한 자장가
이 곡은 장면의 비극성과 달리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따뜻한 여성 보컬이 어우러져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래만 들을 때에는 밝고 포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가사와 애니메이션의 맥락을 떠올리면 곡 속에 스며든 슬픔과 공허가 서서히 드러난다.
But now through all the hurt and 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