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호/컬처노트] 달콤한 죽음과 고통스러운 삶, ‘Komm, süsser Tod(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2025-11-17     민경빈 기자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 순간을 맞닥뜨린 적이 있는가? 발표 10분 전 날아간 발표 자료 놓쳐버린 기차 마감 기한이 코앞인데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은 과제 이별의 순간. 우리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을 경험한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OST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이 아름답기에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노래한다. 그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차분한 선율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삶의 온기를 위로하듯 다가온다.

에반게리온 ost 앨범 커버 (사진 / 유튜브 뮤직 제공)

 

고통 없는 종말의 순간,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은 가상의 생체 병기 에반게리온을 조종해 인류의 적 사도와 싸우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본질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작품은 결핍 사랑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통을 철학적으로 그려내며, 모두가 안고 있는 불안과 외로움을 드러낸다.

후반부에서 인류보완계획이 실행되자 모든 인류는 개별성을 잃고 오렌지빛 액체로 녹아내린다. 존재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절망적인 장면 위로 노래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흘러나온다. 잔혹한 영상 위에 얹힌 잔잔한 노래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남긴다. 비명인지 환희인지 알 수 없는 소리, 그리고 그 위를 덮는 부드러운 선율은 인류의 종말이 주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종말 속에서 들려오는 평온한 자장가

이 곡은 장면의 비극성과 달리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따뜻한 여성 보컬이 어우러져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래만 들을 때에는 밝고 포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가사와 애니메이션의 맥락을 떠올리면 곡 속에 스며든 슬픔과 공허가 서서히 드러난다.

But now through all the hurt and pain

그러나 이젠 모든 상처와 고통을 겪고 나니

It’s time for me to respect

인정해야 할 시간이에요

 

the ones you love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mean more than anything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삶의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순간, 모든 상처와 아픔이 잠시 잦아드는 듯한 평온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완전한 위로나 평화가 아닌 어쩌면 텅 빈 공허일지도 모른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그 안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이 노래가 품은 감정이다.

그래도 괴롭지만, 살아있는 나

회피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이 모순된 선택 앞에 선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들려준다. 죽음을 통해 평온해지고 싶지만 정작 가사 속 화자는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모순이야말로 이 노래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닥친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평온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살아남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발표 10분 전 자료가 날아갔을 때 우리는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발표할 것인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단순히 죽음을 찬미하는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절망의 끝에서도 삶을 선택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준다. 죽음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