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호/교수의 서재] 감상에서 태도로, 그림에서 삶으로
살다 보면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특별한 계기 없이도 불쑥 찾아오고, 때로는 책 한 권이 그 질문에 조용히 답을 건네기도 한다. 《치바이스가 누구냐》과 《한국의 미 특강》은 미술에 관련된 서적이고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이번 ‘교수의 서재’에서는 미술교육과 윤기언 교수와 함께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Q1.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누군가가 “책을 읽었을 때 인상이 깊었던 책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여기 두 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중국 화가의 책인데요, 그 화가의 자서전이에요. 제목은 《치바이스가 누구냐》인데, 중국 화가의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 자전적인 일대기가 담겨있어요. 한글로 번역된 책으로 나와 있어서, 그걸 읽게 됐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제가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요. 지금 학교에도 몇 권이 있어서 아마 학생들도 많이 본 것 같아요. 책을 보니까 줄도 쳐져 있고, 누군가가 읽은 흔적이 있더라고요. 이 책은 우리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데, 단순히 미술사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줘서 인상 깊었어요.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먼저 접한 책은 오주석 선생님의 《한국의 미 특강》입니다. 이 책을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로 접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강의를 준비하면서 찾게 된 책이에요. 한국화를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수준을 넘어서 학생들에게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설명해 줘야 하잖아요.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읽다 보니 우리 전통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오주석 선생님은 미술사학자로서 우리 그림에 대한 연구와 강연을 많이 하셨고,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에서도 활동하셨던 분입니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도 우리 그림을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고, 제 수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치바이스가 누구냐》인데, 이 책은 저희 아버지께서 소개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 서예를 하시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제가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아시고 이 책을 권해주셨죠.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던 시절, KTX에서 이동 중에 이 책을 읽었는데, 유명한 화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던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우연히 시간이 날 때 읽은 책이었지만, 화가로서의 삶을 고민하던 저에게는 큰 울림이 있었어요. 결국 이 두 책은 하나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하나는 화가로서의 삶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책들입니다.
Q3.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치바이스가 누구냐》의 제백석 같은 경우는 원래 목수로 시작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저도 화가의 길을 걷고 있으니까, 이 사람처럼 유명한 작가의 삶을 따라가면 나도 언젠가는 그런 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이 화가가 또 전각(도장 새기는 일)도 하고, 시도 짓고, 글씨도 잘 썼어요. 동양 화가들이 흔히 ▲시 ▲서 ▲화를 함께 한다고 하잖아요. 생활을 위해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결국 그런 완성된 모습이 된 거죠. 그걸 보면서 저도 ‘꼭 뭔가를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나만의 길이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국의 미 특강》은 또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줬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결국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하려면 내가 먼저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오주석 선생님은 우리 그림을 정말 좋아하셨고, 그걸 공부하고 느낀 걸 자연스럽게 풀어내셨거든요. 그래서 읽는 사람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수업할 때 너무 어렵게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먼저 좋아하고 즐기면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야 듣는 사람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으로서 또 화가로서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영향을 준 책들이었다고 생각해요.
Q4.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집에 있던 어느 날 《치바이스가 누구냐》를 꺼내봤는데, 그 안에 무언가가 꽂혀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커피숍에서 받은 종이였어요. 그 종이가 꽂혀 있던 장을 펼쳐보니, 거기에 시 한 편이 적혀 있었어요.
“배꼽도 다정하면 함께 나무 심던 그 사람 기억하겠지.”
이 구절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알고 보니 제백석 화가가 첫째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아들과 함께 배나무를 심었나 봐요. 아들과 나무를 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나무도 마음이 있다면 함께 심었던 사람을 기억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어요. 이 시를 기차 안에서 읽었는데, 정말 창피할 정도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왜 이렇게 슬플까?’ 생각하면서도 감정이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그때 저도 아이가 있었거든요. 물론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이 겹치면서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아요. 창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하게 남아 있어요. ‘결국 화가도 사람이구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감정에서 그림도 나오고 글도 나오는 거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 시 한 줄이, 그때의 그 경험이, 제게는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Q5. 이 책은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교원대에 와서 수업을 해보니까, 당연히 미술교육과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면서 저와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요. 사실은 교양이나 이런 데에서는 미술과 관련해서 감상 수업은 있을 수 있어도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할 수 있는 수업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학생들이 좀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간혹 과는 다른 과인데 저희 수업을 기초 수업으로 들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 또 복수 전공을 지원하는 학생도 매해 있거든요.
그렇게 보면, 미술에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냥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누가 봐도 크게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 책 같은 경우는, 저도 가르치면서 느낀 건데 꼭 미술이 아니더라도 ‘태도’는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사로서 학생에 대한, 또는 교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러한 생각들이요. 그래서 교사를 꿈꾸는 교원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책을 꼭 읽어야 한다기보다는, 곁에 두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책을 좋아하셔서 주변에 책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문득 집어 들었는데 계속 읽게 되는 경우도 있고, 펼쳤을 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어떤 부분과 딱 만나는 경험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꼭 독서를 해야 한다거나, 책을 몇 번 읽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놀 때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책이 마음에 들면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면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한 권, 두 권 곁에 두면 언젠가 또 읽게 되더라고요.
적어도 주변에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친구가 있어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 있잖아요. 사실은 자기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이 시대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다른 시간에 살았던 사람과 만나는 방법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드리자면, 아버지도 친구가 많으신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지금은 AI가 있으니까 그런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책을 가까이 두면 좋겠고, 관심이 있다면 꼭 읽지 않더라도 한 권쯤 사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