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호/교수의 서재]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 歷史
역사는 무엇을 위한 학문인가, 혁명은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일어나는가. 역사교육과 김대보 교수는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피에르 세르나의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를 통해 역사학의 본질을 찾는다. 이번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역사교육과 김대보 교수와 함께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보고자 한다.
Q1.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피에르 세르나의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입니다. 먼저 《역사를 위한 변명》은 역사란 무엇인지, 역사는 무엇을 연구하고 누가 생산하는 것인지 등 역사학의 본질에 대한 마르크 블로크의 정리가 담긴 책입니다. 특히나 마르크 블로크의 주장 중에 제일 중요한 건 ‘비교’인데요, 역사학에서 비교가 매우 중요합니다. 항상 어떤 분야를 연구하다 보면 그 주제에만 매몰돼서 동시대 차원에서 또는 통사적인 차원에서 역사의 흐름 속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게 돼요. 그래서 항상 ▲지리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비교를 해주면서 무엇이 변화했는지 아니면 무엇이 다른지 이런 것들을 파악해야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라는 책은 총 5편의 글을 모아놓은 책인데요, 전체 글이 다 좋지만 제가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첫 번째 글인 〈모든 혁명은 독립전쟁이다〉입니다. 사실 혁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답을 잘 못해요. 사회학적으로 또는 정치학적으로 항상 혁명이라는 건 ▲급격한 변화 ▲정치적인 변동 ▲뿌리 깊은 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러면 역사 속 여러 개의 혁명에서 자꾸 공통점들을 뽑아내게 되고 이로 인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범주화하게 돼요. 그런데 역사라는 학문은 인간을 이해하면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학문이거든요. 법칙을 찾지 않아요. 따라서 획일화된 모습이 아닌 수십억 명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부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 가지 책을 통해 제가 생각하는 역사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떤 발언권을 잃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직업이 역사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라는 거는 계속 끊임없이 우리가 잘 모르는 목소리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그게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2.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마르크 블로크라는 사람이 훌륭한 역사가이기도 한데 이 사람의 삶이 무척 존경스러웠어요.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를 공부하는 교수였는데, 50대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가장 나이 많은 대위로 입대하게 됩니다. 그 후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나치에 적발되어 총살당해요. 이건 전해지는 얘기지만 마르크 블로크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옆에 어린아이가 있었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아이가 역사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봤대요. 그런데 그 순간까지도 되게 따뜻하게 대답해 줬다는 거예요. 이런 삶이 되게 저는 본받고 싶었던 게, 대부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냥 거기서 끝나는데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공부한 거를 나의 삶에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특히 역사 공부를 하면 과거 사람들의 삶을 배우면서 ‘이렇게 훌륭하게 살 수 있구나’, 또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등등을 깨닫게 되는데, 막상 그런 것들을 내 삶에 대입해 보면 이를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내가 공부하는 것과 내 삶의 모습이 다를 때 무척 고뇌하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또는 누군가의 침략을 받았다 했을 때 내가 과연 죽을 수도 있는데, 한 치의 고민 없이 뛰어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위대해 보여요. 따라서 저와 같은 업을 가진 마르크 블로크라는 사람이 먼저 그런 삶을 보여줬다는 게 정말 위대해 보여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책을 통해 ‘혁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혁명이라는 게 정말 사회학 또는 정치학에서 얘기하듯이 그렇게 급격한 변혁이나 이런 것들로 정의를 해야 할까? 사실 그렇게 하게 되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너무 도식화 시켜버리는 거잖아요. 스펙트럼을 보면 빨주노초파남보가 분절적이지 않고, 빨간색부터 그러데이션이 있잖아요. 인간의 모습은 이런 그러데이션처럼 다양한 건데 이걸 나누게 되는 순간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게 제한을 받는다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혁명이 무엇을 성취하기 위함인지, 궁극적으로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3.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는 이 책의 가장 첫 문장인 ‘역사학의 대상은 본래 인간이다’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역사라는 학문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죠.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역사를 안다는 게 과연 역사책에 나오는 수많은 지식을 많이 아는 게 끝인가 하는 부분이에요. 사실 모든 학문은 다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특히 인문학과 역사는 진짜로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것인데 이 사실을 언젠가는 간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르크 블로크의 이 말이 떠올라요. ‘인간을 위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디차게 보이는 문서, 그리고 그것을 만든 자들과는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 제도 너머로 역사학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라는 것이죠.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것인가? 인간의 다양한 삶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사실들이 저에게는 되게 큰 영향을 줬어요.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중 〈모든 혁명은 독립전쟁이다〉에서는 가장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는데요. ‘혁명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혁명은 끝없이, 가장자리에서, 다시 발명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혁명이라는 건 대체로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 속에서 보면 시대에 따라 항상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달라지는 게 아니라 시대마다 헤게모니가 변화하고 권력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들의 관념이 바뀌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원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 중에 어떤 것이 우위를 점하느냐의 문제예요. 이에 시대마다 ‘자유, 평등’에 대해 서로 다른 관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더 많은 사람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그 자유나 평등이라는 관념이 자기들한테는 전혀 해당이 안 된다는 거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부에서 혁명이 발생하는 것이죠.
Q4. 이 책을 추천해 준다면 누구(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일단 저는 두 책 모두 기본적으로 역사교육과 학생들한테 거의 필독서처럼 읽히고 싶습니다(웃음). 이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는 학부 3학년 때 서양 근대사를 배우니, 학부 4학년 정도 때 읽으면 좋겠지만,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테니 졸업하고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역사를 위한 변명》은 그냥 학부 1학년부터 읽어도 상관없어요. 이 책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단계일지라도, 어렵게 읽어보는 연습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쭉 읽어보고 자기가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약간 흐름이 잘 눈에 안 들어온다 싶으면 또 읽고 이렇게 여러 번 읽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려운 책들도 나중에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물론 중간에 읽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는 과정도 거쳐야 하긴 하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은 내가 뭘 모르는지 아는 단계에요. 너무 모른다고 해도 계속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제보단 오늘의 내가 뭔가 하나라도 더 알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Q5.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하고 잘 공존하며 살기 위해서는 정말 인간을 다루는 책들을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고전이 됐건 현대소설이 됐건 이런 소설을 통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소설 속의 내용이 정말 생뚱맞은 내용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소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게 진짜 삶의 다양성을 너무나 많이 보여줘요. 역사는 사료가 없으면 서술할 수 없기에 한계가 있지만, 소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만으로 충분히 작성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소설 같은 것도 많이 읽고, 예술 이런 것들도 좀 즐기기도 해야 사람이 살아갈 때 항상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좀 둥글둥글하게 부드럽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자신의 모습은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인간을 보여주는 다양한 글들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