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호/사설] '사소(事小)’와 ‘천장부(賤丈夫)'

2025-10-13     한국교원대신문

국가들 간에 외교전을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국익(國益)’의 추구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상대국이 이익을 취하도록 돕는 것이 장래에 얻을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또 때로는 눈앞에 놓여 있는 자국의 이익을 당장 취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이처럼 국익을 얻는 것이 녹록지 않은 일이라지만, 최근 실리외교’, ‘자국 우선주의같은 미명 아래 강대국이 동맹국이나 자기네보다 국력이 약한 국가를 홀대하는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러한 때 고대 중국의 혼란기였던 전국(戰國) 시대를 살면서도, 인간 본성의 선함[性善]을 믿고 왕도(王道) 정치의 가능성까지 제안했던 맹자(孟子)사소(事小)’라는 용어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국가와 국가가 관계를 맺는 방법에 있어 소국이 대국을 섬긴다는 의미의 사대(事大)’는 드라마나 역사책에 자주 등장한다. 비록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대는 주요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교술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소는 무슨 뜻일까? 이 단어를 국역하면 대국이 소국을 섬긴다는 것으로, 맹자에는 이웃국과 교류하는 데 어떤 원칙이 있느냐는 제선왕(齊宣王)의 질문에 맹자가 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대국이 왜 소국을 섬겨야 할까? 얼핏 보면 다소 어색한 사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양혜왕(梁惠王) 편에서, 맹자는 인()한 자만이 대국으로 소국을 섬길 수 있고, 지혜로운 자만이 소국으로 대국을 섬길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지혜로운 자가 다스리는 소국은 대국과 관계 맺음을 잘하기 때문에 국가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소국의 노력에 대해 대국이 예의로 응대하지도 않고 전혀 화답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소국 대 대국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소국이 대국의 일방향적인 요구를 받아들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억지 봉합이 이루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소국이든 대국이든 모두 자국의 백성들만 곤경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특히 대국이 소국을 예의를 갖춰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맹자는 소국이 대국을 섬길 줄 알면 그 나라가 보전되지만, 대국이 소국을 섬길 줄 알면 온 천하가 보전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맹자의 사소에 비추어볼 때, 현재 초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 러시아 등이 우방국과 외교 상대국을 대하는 태도는 사소와 합치된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정반대의 고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급한 국가의 지도자들은 자국민이나 이웃국들로부터 맹자에 등장하는 큰 용기와 성찰적 자세를 지닌 대장부(大丈夫)’라고 호평을 듣고 싶겠지만, 그럴 리 만무하다. 오히려 천장부(賤丈夫)’라고 지칭되는 것이 마땅하다.

 

공손추(公孫丑) 편에 엿보이는 천장부는, 주변보다 높은 언덕을 의미하는 농단(龍斷)에 올라가 목을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자신과 타자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입히는 비루한 인물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 외교 상대국으로부터 대장부라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더라도, 자신이 저지르는 언행이 스스로를 천장부의 길로 몰고 가고 국가의 격마저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