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호/독자의 시선] 붙잡으려던 것에 붙잡혀
박정언(윤리교육·23) 학우
새벽 다섯 시 반. 청람관 문을 나섰다. 운동장은 말이 없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나를 따라다녔다.
동을 트는 저 해는 어제와 같을 오늘을 또 맞이하느냐며 나를 나무랐다. 초라해진 나는 어제가 아직 저물지 않았노라 속으로 반박하듯, 옅어지는 새벽달에게 나도 데려가달라 외쳐보았다. 하지만 어제도 내게 고깝긴 매한가지였기에, 이내 말을 삼켰다. 대신 나는 조용히, 내 안에 말을 걸어갔다.
어릴 적부터 교사를 꿈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엔 설렘이 있었다. 교단에 선다는 건 아직도 막막하지만, 사범대에 몸담은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는 마음이라 여긴다. 교사로서의 삶을 상상해본다. 빠듯하지 않은 일상, 퇴근 후 남은 여백에 글을 쓸 수 있는 조용한 밤. 가끔은 그런 삶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역시 교사란 길은 아직 내 안에 작게라도 살아 있다.
그러나 마음은 한 갈래로만 흐르지 않았다. 입학 후, 내 안엔 다른 꿈들도 스며들었다. 재수 시절 타오르던 마음을 떠올리면 수능 강사가 되어 그 불꽃을 건네주고 싶다. 좋아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국어학이라는 이름도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오래 내 곁에 머물렀다.
진로란 길들 사이에서 나는 오래 매여 있었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할까 두려웠고, 어떤 길이든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안정적일까. 앞으로도 자리가 남아 있을까. 단면만 보고 적성에 맞다 생각한 건 아닐까.”
결정만 하면 누가 시켜주는 것도 아닐진대, 장단점만 비교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일조차 숨이 차는듯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우스워졌다. 내가 길을 붙잡은 줄 알았건만, 길이 나를 붙잡고 있었나 보다. 하나를 고르지 못한 건 더 단단히 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것도 펼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쥔 이름들은 어느새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꿈이라 부르며 손을 놓지 못한 채 오래 머물렀다.
운동장을 걸으며 하나씩 놓아본다. 땅에 발을 붙일수록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제야 비로소 내 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갈림길 바로 앞에 서 있다고 믿었지만, 마주 보니 갈래는 아직 멀리 남아 있었다.
서둘러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은 무엇이 되기보다, 어떤 내가 될지를 묻는 시간이다. 목적지는 없어도 어제보다 나은 나로 나아가고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말없이 떠 있는 해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언젠가 갈림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도 바뀌지 않았다. 허나 걸음을 묻지 않기로 했다. 나아간다는 사실이 그저 전부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