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호/사무사] 교육의 본질
2025학년도부터 교육부는 고등학교 내신 5등급제와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다. 9등급으로 세분화된 기존 체계를 다섯 단계로 줄이고,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는 학점제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경쟁 완화’와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은 매번 개혁의 서두를 장식한다. 그러나 정작 그 개혁이 우리 교육 현실에 맞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제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그 변화의 궤적이 늘 우리 사회와 학생의 현실을 반영해 왔던 것은 아니다. 9등급이 5등급으로 바뀐다고 해서 평가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학생들은 평가 결과에 좌우되며, 학습의 본질보다 점수 획득에 집중한다. 결국 문제는 제도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진지한 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외국의 교육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이 대표적이다. IB는 탐구 중심,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우수한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이 탄생한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위험하다.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의 ▲학습 환경 ▲정서 ▲사회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생략한 ‘형식적 도입’은 결국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질 뿐이다.
5등급제와 고교학점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 현실에 맞는가, 학생과 교사의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가이다. 제도는 교실 안에서 살아야 한다. ▲수업의 변화 ▲평가의 혁신 그리고 ▲교사의 신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도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교육은 어떤 철학 위에 서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의 근본은 모방이 아니라 ‘해석’이며, 수입이 아니라 ‘창조’다. 한국적 현실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교육의 철학을 세우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진짜 교육적 개혁이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사가 되기를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이 물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수행하는 행정의 도구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해 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외국의 이론이 아니라, 우리 교실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만들어갈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교육은 결국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국 현실에 맞춘 교육을 구현하고 지속적으로 지켜나갈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한 제도 모방을 넘어,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