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호/교육현장엿보기] 교사가 학생이 된다는 것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역사교육·24)
아직 논문을 쓰고 있는 석사 학위 지망생이지만, 교원대에서 1년 반 동안 학생으로 지내며 학생의 마음을 몸소 느껴본 교사였기에 그 깨달음들을 적어보려 한다.
솔직히 나는 내 인생에 더 이상 공부의 심화 과정은 없다고 믿었다. 대학교 졸업, 그리고 임용고시 합격과 동시에 나는 대학교에 얼씬조차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대학원에 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다. 아마, 그렇게까지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육과정은 꾸준히 변하고, 교육청의 정책도 매년 바뀌는 와중에 나의 수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6년 차 교사로서, 이전부터 발품을 팔며 얻어온 재밌는 게임들, 활동들, 자료들을 편집해 역사 수업을 진행했다. 역사 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았지만, 유튜브나 강의를 찾아보며 어찌저찌 때웠다. 학생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지만, 색다른 수업을 하는 역사 교사들을 만날 때는 나도 모르게 좀 작아졌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이들에게 계속 상처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택한 길이라, 그간 내가 가졌던 편견들과 고민들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한숨 돌리며 나를 돌보고 싶었다. 하지만, 벌써 3학기를 지낸 지금 나의 마음가짐은 입학할 당시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꽤 달라져 있다. 조금 더 얘기하면, 교육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교사가 오롯이 학생이 되어 교육의 과정 안에 있어 보니 학습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은 그전까지 내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대학원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책을 좋아했던 내가 되었다. 어릴 때 시간 나면 책을 쉽게 손에 들었던 나였는데, 오히려 교사가 된 이후로는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니 느꼈다. 책은 재밌는 거였다. 어려운 책이라도, 선생님들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음번에는 조금 더 이해하려고 꼼꼼하게 읽어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가장 뿌듯한 것은 글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문해력도 꽤 늘었다. 그렇다면, 책 잘 읽지 않는 우리네 학생들이 책에 대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게 하려면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었다. 책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들과 친구가 깨달은 것들이 합쳐지며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나도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들과 함께 꼭 책 대화를 할 거다.
동기 선생님들과 독서와 논문 스터디를 하고, 함께 답사를 준비하면서 너무 당연하지만, 그간 잊고 살았던 인생의 원칙도 다시 배웠다. 그건 바로 ‘공부는 같이 하는 것’이라는 진리다. 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하고,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남을 떨어뜨려야 내가 합격할 수 있는 세상 속에 살았던 나는 아주 단순한 이 원리를 실천하지 못하며 지냈다. 내 손에 있는 것들을 주는 데도 멈칫했고, 혹여나 내가 피해 입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좋은 선생님들과 서로의 논문을 읽어주고, 피드백해 주고, 서로를 응원해 주면서 나는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만큼 진심으로 내 친구들의 성장을 바랐다. 같이 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물론 대학원의 시스템이 절대평가라는 점 역시 우리의 순수한 우정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도 성취평가제이다. 그 효과를 내가 직접 경험했으니 더 당당하고 자신 있게 “공부를 함께 하라, 가진 것을 나눠라,”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같이 해야 멀리 간다.
좋은 멘토를 만나면, 한 사람의 인생의 각도가 달라지는 것도 체감했다. 지도 교수님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논문을 써 나가고 있는 나는, 처음에는 내 글과 생각이 계속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그리고 기대만큼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주춤했다. 그런데 교수님의 조언 덕분에 점점 그럴듯해지는 나의 글을 보고, 이것이 진짜 교사의 역할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교사는 학생을 감독하고, 점수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피드백을 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교사의 평가는 학생의 과정을 확인하고, 학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교육학에서 매번 배웠던 그 말을 직접 경험해보니 더더욱 평가를 이런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기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다시 할 수 있도록 여러 번 기회를 줘야지. 나처럼, 아이들 스스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되는대로 피드백해 줘야지.
끝으로, 교사도 계속 배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간 공교육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하던 대로 접근했었다. 역사적 내용들은 계속해서 축적되고, 역사 교육의 논의도 점점 더 풍부해지며, 교육 트렌드는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것들을 배울 생각을 깊게 하지 못했다. 대학원에 와 보니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교로 돌아간 나는 3년 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좋은 교사가 되려면 계속 배우고, 성찰하고, 나누는 교사여야 했다. 앞으로 나는 쉬워 보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이 원칙을 실천해 보려 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지도 교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전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교수님은 ‘지도 교수’라는 한국어보다 ‘advisor’라는 영어 표현을 더 선호하신다고 한다.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생의 앞에 서서 이미 정해진 목표로 학생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과 나란히 서서 그가 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지도 교수’의 진짜 역할이라 생각하시는 거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나 역시, 교사의 역할도 그런 거라고 점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