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호/기자칼럼] 우리는 극단을 향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아야 한다

2025-09-22     서수연 기자

지난 910, 미국의 정치 활동가 찰리 커크(이하 커크)가 유타주에 위치한 유타밸리대학교 토론회 진행 도중 총격을 받아 숨졌다. 그는 ‘Turning Point USA’의 창립자이자 대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아이콘으로도 불린다. 보수 진영의 주요 인물이 암살당하면서 해당 사건은 미국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우리 대한민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현지시간으로 913, 암살 사건 이후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 로마에서 커크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하며 유럽 지도자들의 애도 성명 행렬은 포퓰리즘의 국제적 수렴으로, 그 중심에 커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직접적인 소통과 연대가 활발해졌고, 커크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마가로 대변되는 반세계화 민족주의 등의 의제를 전파하며 유럽의 포퓰리즘 세력과 이념적 결속을 강화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청년 단체 자유대학이 서울 중구 숭례문 남쪽 광장에 커크를 기리는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자유대학은 추모문을 통해 커크는 정치적 참여와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전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했다라며 당신(커크)이 심은 자유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이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추모를 필두로 한 집단의 결집이 사회에 미칠 또 다른 파장과 극단적으로 치닫는 정치 이념 간 갈등이 우려되는 바이다. 이에 이번호 기자칼럼에서는 이러한 정치 이념 간 갈등에 대해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들을 전해보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필수적으로 정치가 이루어진다. 정치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는 각자가 가진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사전적 정의를 활용해 보려 한다.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로, 국민의 인간다운 삶 영위 상호 간의 이해 조정과 함께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 등을 수행한다. 이러한 정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체제 또한 발전해 왔다. 이에 더해, 오늘날에는 대선·총선 투표 시위·집회·시민 운동 참여 공청회·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정책 결정 과정 참여 SNS를 통한 의견 개진 등 여러 영역에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멈춰있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개인, 집단,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유동적인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이러한 정치 참여의 양상이 참여를 통한 의견 개진이 아닌 의견 개진을 위한 참여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참여 수단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대선·총선 투표로, 시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자신과 이념이 같은 정당의 후보자에게 맹목적으로 표를 던진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후보자가 제시한 정책보다는 그의 정치 성향으로,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이 설립된 이래로 지속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정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같은 후보자를 뽑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게 투표권이 향하는 방향이 한 곳으로 결정되어 버린다면, 그 투표에 의사 결정 과정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SNS를 통한 의견 개진에서는 보다 강한 정치적 이념의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익명을 보장받은 채 자신과 다른 성향의 정치인, 연예인에 더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하는 시민들에게 비난을 일삼으며 대립한다. 심지어 상식적인 언행조차 행위자의 정치 성향을 투영해서 바라보고 지지 또는 불만을 표한다. 더 이상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이 옳은지, 또는 그른지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을까? 혹은 자신만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나만이 옳다와 같은 생각이 정치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나의 생각만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틀린 생각일 수도, 여러 옳은 생각들 중 한 종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닫을수록 양측은 점점 극단으로 향하게 되며, 이는 결국 사회를 아프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한 집단 안에서, 국가 안에서, 지구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 공존해야 하며 그러한 삶의 과정에 있어서 정치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의, 정치 참여 과정에서의 우리들은 극단을 향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다가가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