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호/사회탑] PTSD, 우울증 등 심리적 어려움 겪는 소방·경찰공무원 증가해
이제는 생명을 구조하는 이들의 마음을 구해야 할 때
지난 8월, 두 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인천의 소방서 소속 A 씨는 참사 이후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며,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사망한 분들을 검은색 구역에 놓는데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라고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A 씨는 이후 지속적으로 심리상담과 치료를 받아왔으나, 8월 10일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긴 메모가 그의 마지막 행적이 되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또 다른 소방관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남의 소방서 소속 B 씨 또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으로, 현장에 다녀온 후 불안장애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이어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참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 경찰관 등 공무원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호 사회면에서는 해당 사건과 관련지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그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사회의 공무원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PTSD 경험 소방공무원, 4년 새 1,709명 증가 … 공무성 질병 요양 승인에 대한 보완 필요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일차적인 원인은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모두가 PTSD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에 사건 경험 전의 심리적·생물학적 사전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위 두 소방관과 더불어, 참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은 PTSD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는 비율이 높다. 소방관 6만 1,087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2024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PTSD를 겪는 소방관은 2020년 2,666명(약 4.3%)에서 2024년 4,375명(약 7.2%)으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우울증을 겪는 소방관은 2,028명(약 3.3%)에서 3,937명(약 6.4%)으로, 자살위험군 소방관은 2,301명(약 3.7%)에서 3,141(약 5.1%)명으로 증가했다.
이와 같이 소방관들의 심리적 회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지만, 현재는 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B 씨의 경우 PTSD를 사유로 ‘공무상 요양(재직 중 발생한 공무상 질병이나 부상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요양 기간에도 급여를 보장하는 제도)’을 신청했었다. 공무상 요양 심사가 진행 중이던 때 고향으로 근무지를 옮긴 B 씨는 5월 25일까지 한 차례 질병휴직을 했으나 6월 중순 업무와 PTSD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공무상 질병 요양 불승인 통보를 받게 되면서 재차 장기재직휴가와 질병휴직을 신청했고, 이 기간에 사망했다. 소방청과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 따르면, B씨와 같이 ▲PTSD ▲우울증 ▲트라우마 등의 정신질환으로 공무상 질병 요양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22건이다. 이는 전체 공무상 질병 요양 청구 건수(1,190건) 중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이 중 승인받은 건수는 91건(약 74.5%)이다. 즉 나머지 31건(약 25.5%)은 불승인된 것이다. 낮은 수준의 승인율은 아니지만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소방공무원과 같이 참사 현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참사를 경험한 경우는 공무상 질병의 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성명을 통해 “국민을 지키는 소방공무원이 국가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이 더 이상 방치돼선 안 된다”라며 두 명이 연이어 목숨을 잃은 것은 현행 지원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방공무원의 PTSD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보장하고, 재난 대응 인력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강화해 ▲치료 ▲휴식 ▲재활 지원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 소방·경찰공무원 심리적 어려움 겪어 … 심리상담 지원 필요성 대두돼
공무성 질병 요양 인정 범위 확대 외에도 심리상담과 관련해서 지원 방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성현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구급국장(이하 김성현 구급국장)은 지난 8월 20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찾아가는 심리상담이 있는데 요일이나 시간을 정해놓고, 상담받을 사람은 받고 오라는 식이어서 장소의 제약이 크다”라며 의견을 표했다. 또 김성현 구급국장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갈 때 휴가를 내고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와야 한다면서 다른 대원의 쉬는 시간까지 뺏는 것 같아 부담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찾아가는 심리상담의 전문 상담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24년의 심리상담실을 통한 상담 건수는 7만 9,453건으로, 2020년 상담 건수인 4만 8,026건에 비해 4년 새 약 65.4%가량 증가했다. 상담 건수가 절반 넘게 증가한 상황이지만 2024년 기준 상담사 수는 102명으로, 상담사 1인당 평균 약 779건을 소화한 셈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소방공무원의 마음 건강은 곧 재난 대응력,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라며 1소방관서 1상담사 배치가 이뤄지도록 정부와 적극 협의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2025년 시·도 소방관서 대비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사 현황 (표 / 이진서 기자)
소방공무원과 더불어,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공무원의 고통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파출소에서 6년간 근무했던 경찰관 C 씨는 경찰 내부망(현장 활력소)을 통해 “참사 당시 이태원은 전쟁터였고, 6시간을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뛰어다녔지만, 수많은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라며 심정을 전했다. C 씨와 같이 PTSD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 경찰청은 2019년부터 전문 상담소인 ‘마음동행센터’를 전국 18곳에서 운영 중이지만, 고충을 호소하는 경찰관들이 많아 센터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2020년과 2024년을 비교했을 때 심리상담을 받은 경찰관 수는 8,951명에서 1만 6,923명으로 약 1.8배, 상담 횟수는 1만 7,487회에서 3만 8,197명으로 약 2.1배 증가했지만, 상담사 인력은 같은 기간 21명에서 36명으로 증원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마음동행센터 자체가 경찰관 숫자나 경찰관 위치를 감안했을 때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업무에서 제외하고 휴가를 가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이 회복할 수 있는 것들은 업무와 연계해 지장이 없도록 하는 제도들이 갖춰줘야 하는데, 업무 부담이 크다 보니 신청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지난 8월 두 명의 소방관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현장에 출동했던 직원들이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심리적 어려움이 재발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경찰청은 8월 25일 이태원 참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출동했던 1,656명의 경찰관에게 마음동행센터와 민간 상담센터에서 추가 심리상담이 가능하다는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그러나 마음동행센터의 상담사 인력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상담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 심신수련원 설치 조례안 발의 예정, 내년 6월 국립소방병원 개원 등 현실적 지원 방안 마련 준비 중
소방공무원들의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대두되는 가운데, 여러 지원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경기도의회 의원연구단체인 ‘경기 소방공무원 치유정책 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지난 8월 21일 《경기도 소방공무원 심신안정 지원제도 개선방안 연구》의 최종보고서를 발간하며 심신수련원 설치와 정신건강 지원 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소방공무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동 건수와 인구 부담률을 감당하고 있기에 과중한 업무 환경에 처해있으며, 그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를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진은 ▲예방 ▲조기개입 ▲치료 ▲회복 ▲복귀를 포괄하는 경기도 소방공무원 심신안정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할 것을 제안하고, ‘경기 소방공무원 심신수련원(이하 심신수련원)’의 설치를 구체화했다. 더불어, 국민의힘 안계일 의원(연구회 회장)은 올해 하반기에 수련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하고 법적 근거와 함께 공공성·운영효율성 모두를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다.
한편, 소방청은 9월 3일 2026년도 예산안 편성을 발표하며 참혹한 재난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사 18명 추가 배치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참가자 200명 확대 등 보건·안전사업 예산 51억 원을 편성했음을 밝혔다. 이에 더해, 내년 6월 정식 개원을 앞둔 국립소방병원 운영에 필요한 예산 394억 원도 투입한다. 국립소방병원은 국내 첫 소방공무원 전문 의료기관으로, 해당 기관에는 정신건강센터(이하 센터)가 설치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군 장병의 정신건강 진료부터 ▲재활 ▲연구 ▲교육 등을 전담하는 국군수도병원의 센터처럼 국립소방병원의 센터가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치료뿐만 아니라 전문 상담사 교육 및 지도·연구까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은 시민들이 생과 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가장 먼저 출동하여 인명을 구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지킨 생명이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만큼, 그들이 하늘 아래에서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행정적 지원이 마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