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호/교육탑] ‘고교학점제’ 둘러싼 분분한 의견, 시행 후 한 학기 지난 현재 지표는?

2025-09-07     정경진 기자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함으로써 올해 3월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됐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한 학기 남짓 지난 현시점, 교사들의 업무 부담 가중부터 어긋난 정책들로 인한 균열까지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현장의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호 교육면에서는 고교학점제의 현 상황에 대해 짚어보고, 고교학점제가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지원 등이 필요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올해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 미흡한 준비와 함께 어영부영 시작돼

올해 3월부터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처럼 필요 수업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됐다. 고교학점제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이 졸업하기 위해서는 3년간 192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하며, 과목별로 출석률 3분의 2 이상과 학업 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해야만 한다. 반대로 출석이 부족하거나 최소 성취 수준을 맞추지 못하면 해당 과목은 미이수 처리되고, 이수하지 못한 과목이 생기면 상위 학년으로 진급할 수 없으며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를 통해 졸업을 유도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책임교육을 목표로 도입됐다.

이러한 고교학점제는 수년 전부터 예고된 정책이었음에도, 교육 당국이 개학 이후까지 출결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는 등 준비에 미흡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31, 교육부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 출결 지침 변경 공고 내역에 다음과 같은 정황이 담겼다. 교육부가 20251학기가 시작된 이후인 34일에서야 고교학점제 적용에 따라 달라지는 출결 처리 방법과 나이스 기능에 대한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낸 것이다. 또한 교육부는 개별 학교의 준비 사항 점검도 올해 4월에서야 마쳤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 계획 등 기본 규정을 수립했는지도 점검하지 않고 제도부터 시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인해 교사들의 업무 폭주 호소 학생과 학부모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러한 교육부의 미흡한 사전 준비와 학생 선택과목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교사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교사들의 수업 준비 시험 출제 학생 개인별 학생부 기록 업무 등이 가중됐고, 기존 학년 단위가 학기 단위로 바뀌면서 업무량도 배가 됐다. 또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이 학교에 없을 경우 공동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하고 이에 따른 운영 관리 업무는 물론 빈번한 수강 신청 내역 변경 요구까지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인력 보강 없이 늘어난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고교학점제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해의 한 고등학교 교사 A 씨는 지난 826 열린 경남 교육공동체 고교학점제 온라인 토론회에서 교육과정 편성을 위해 16번 이상의 위원회를 개최해야 했고, 강사 부족과 공간 한계로 인해 학생 선택권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교학점제 당사자인 고등학교 1학년 한 학생은 과목 선택권이 확대됐다고 하지만, 진로가 불분명한 학생들은 친구들을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특히 5등급제 도입으로 내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학교가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 학부모는 정보 부족으로 인한 혼란과 사교육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1학년부터 진로와 과목 선택을 강요받는 부담감과 최소 성취 기준 미달 시 자퇴를 고려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다양한 잡음 고교학점제와 엇박자나는 정책들

위와 같이 고교학점제가 학교 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다양한 정책적 잡음 또한 발생하고 있다. 먼저, 현 입시 체제와 고교학점제 간의 궁합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김성천 교수는 한국교원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때 정시를 확대하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2028 대입안에서 상대평가 기조를 유지하면서 궁합이 맞지 않는 수능이나 내신 상대평가 체제와 고교학점제 사이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한 도입이었지만 내신 9등급제가 5등급제로 바뀌면서 상황이 뒤틀렸다. 5등급제에서는 1등급 10% 2등급 34% 3등급 66% 등으로 각 구간이 넓어졌기 때문에 소규모가 듣는 과목을 잘못 선택하면 내신 성적이 대폭 떨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김용태 전 노무현재단 광주 시민학교장은 “5등급제로 인해 물리, 기하 등 등급 받기가 힘든 과목은 폐강 1순위 과목이 됐다라며 실상을 꼬집었다.

교사 정원 감축과 고교학점제 사이의 불균형 또한 하나의 정책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전국 교사 정원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고교 교사 1인당 2~4개의 과목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사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 3단체가 최근 교사 4,162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개 이상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 비율은 78.5%에 달했고, 86%수업의 질 저하를 호소했다.

고교 교사 1인당 담당 과목 및 교사 정원 현황 (사진 / 국민일보 제공)

이뿐만 아니라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이하 보장 지도)에도 어려움이 존재한다. 보장 지도는 국가가 학생의 일정 수준 학력을 보장한다라는 취지로 들여온 고교학점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교사 부담은 상당하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규수업 외에 1학점당 5시간의 보충 지도를 해줘야 해서 학기 말이나 방학 중 수업이 불가피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학생을 선정하는 단계들도 너무 복잡하고 피로도가 엄청나다라며 보장 지도의 어려움에 대해 전했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필수 이수 과목을 예전보다 적게 듣다 보니 무슨 과목을 수강해야 입시에 유리할지 눈치 싸움을 하는 폐단도 발생했다. 광주의 한 고교 1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적성이나 진로보다는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라며 전 과목 5등급 상대평가 산출도 입시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고 이런 복잡한 교육과정이 결국 사교육 컨설팅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라고 토로했다.

이밖에 경쟁 과열을 줄이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하는 과목 수와 그 내용을 축소하기로 한 2028학년도 수능은 물론,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대학교의 무전공 선발 확대 등도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조기 진로 탐색과는 서로 엇박자가 나는 정책들로 꼽힌다.

고교학점제 문제점 및 논의 중인 개선 방안 (사진 / 매일경제 제공)

 

고교학점제 안정화를 위한 각 시도교육청의 노력,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고교학점제는 기승전 대입으로 귀결되는 한국 공교육 현실을 뒤집고 학생에게 선택권을 돌려주고자 했으나, 역설적으로 대입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김성천 교수는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인해 교육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의 폭이 넓어지는 등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나, 정책의 어그러짐으로 인해 정책과 지원이 병행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국 시도교육청은 고교학점제의 안정화를 위해 각자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먼저 충청남도교육청은 충남온라인학교운영을 통해 교육의 지리적 한계를 넘고, 학생 중심의 맞춤형 학습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고교학점제의 실질적 정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김지철 충청남도교육청 교육감은 온라인학교는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교육혁신의 장이라며 지역사회 대학 학교가 함께 고교학점제의 모범을 만들어 가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8272026년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조성사업 대상으로 49개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조성사업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지원하는 공간의 조성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고교학점제가 학교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경기교육만의 새로운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조성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라며 포부를 전했다.

한편, 지난 822일 교육부는 교사·학생·학부모가 참여한 고교학점제 자문위원회에서 도출한 고교학점제 개편 권고안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보고했다. 이번 권고안에는 학점 이수 기준을 학업 성취율이 아닌 출석률로 개선하는 방안을 비롯해 출결 관리 확인과 학생부 작성 간소화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김성천 교수는 학점 이수 기준을 출석률로 대체한다면 내용상으로는 고교학점제 폐지로 볼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고교학점제의 지향점을 지켜나가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살아나려면 미이수 학생들에게 재이수제 대체 이수제 추가 이수제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교사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교육부 주관으로 공동 교육과정이나 온라인과정 등을 만드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교학점제 도입의 중심에는 학생들의 자율성 함양의 교육철학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교 과정 특성상 학교 성격과 목적 및 교육과정 등 여러 면에서 대학과는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학점제 적용에 있어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려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사 증원, 수능 절대평가 등 다양한 지원 및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