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호/사무사] 소신의 정치

2017-05-15     한건호 기자

대선이 끝나고 정의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이광수 교수의 다소 과격한 SNS글이 화제가 됐다. 대선 당시 ‘정의당은 다음에 뽑으라’며 이른바 사표론을 주장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었다. 상황은 우상호 전 원내대표의 사과와 함께 일단락 됐지만, 사표심리는 대선 과정에서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이기도 했다.
다른 후보보다 유독 사표인식과 맞서야 했던 두 후보는 수차례 걸친 TV토론회와 적극적인 선거 운동을 통해 자신들을 알리기 시작했다. 각 후보들의 능력과 자질이 여실히 드러난 토론회들에선 오히려 유력 후보들의 부족한 모습들이 지적되곤 했다. 문재인 후보의 성소수자 발언이나, 안철수 후보의 우유부단해 보이는 발언 등은 분명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반면 유승민 후보의 경제 분야의 공약들, 심상정 후보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따듯함은 다른 후보들보다 뛰어났던 대통령의 역량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역시 두 후보에게 도드라졌다.
그럼에도 두 후보의 지지율과 최종 득표율에 괄목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분명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새로운 가치를 주장한 그들이었고, 이들의 등장은 과거 보수와 진보의 전형적인 대결의 틀을 깨는 신선한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득표율 6.6%와 6.2%라는 성적표를 받을 수밖에 없던 두 정당은 아쉬운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두 정당 모두에게 이번 대선은 자신들을 알리고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건전한 보수’와 ‘진정한 개혁’을 외친 두 후보에겐 여전히 사표심리가 작용했던 탓일까?
사표심리 외에 구태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큰 몫을 했다. 성차별 발언을 일삼고, 과거 성폭행 모의의 전력을 지닌 자를 중심으로 보수층이 결집하기 시작하자, 일부 유권자들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 아래서 겪어야 했던 부당함과 비상식, 부조리함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 차선을 선택하자는 심리를 자극했다. 그들은 9년이란 시간동안 저지른 파렴치한 사건들에도 모자라 염치없는 정권 창출의 욕심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을 한껏 좁히는 과오를 반복했다.
‘만일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대선이었다면’ 이라는 공허한 생각과 함께 대선은 끝이 났고, 두 정당은 모두 정권 획득에 실패했다. 대선 과정에서 바른정당은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고, 정의당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4%를 밑도는 저조한 지지율에서 시작해 6%의 득표율로 마감한 두 정당은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의 정치적 소신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들을 향한 지지를 단순히 의미 없는 사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 역시 그들이 보여준 정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상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양당체제에서 우리가 포기해야 했던 의례적 가치들이 너무 많았다. 진영을 막론한 정치인들의 배신적인 행태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를 자아냈고, 단기간의 집권만을 위해 발전 없는 제자리걸음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두 정당을 향한 지지는 의미 없는 사표가 아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희망의 약진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부와 함께 구태 정치의 막을 내리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정치의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진영의 양쪽에 위치한 두 정당의 소신의 정치가 이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