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호/교육현장엿보기] 나를 찾아줘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이혜윤(영어교육·25)
중학교 1학년에는 ‘자유학기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임용고시 면접을 준비하며 시책을 외울 때, 이 제도를 ‘학생들의 시험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학생들이 적성과 흥미에 맞는 수업을 선택하여 듣는 것’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처음 자유학기제 수업을 맡으면서 어떤 수업을 만들어 볼지 고민하던 끝에 떠올린 수업의 이름은 ‘나를 찾아줘’였습니다. ‘꿈’, ‘끼’, ‘적성’, ‘흥미’라는 단어들이 저로 하여금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제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저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저 선생님이 공부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과를 선택해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스치듯 얘기했었던 영어 채널 아나운서라는 장래 희망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영어로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가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양치질을 하면서 그 모습을 그리다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방송인의 길은 멀고도 험했고, 부모님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캠퍼스 취업 상담에서는 저의 영어 실력보다 먼저 몸무게를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게 보장된 교직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그 어려움들을 무릅쓰고 새로운 분야로 노선을 바꿀 용기가 차마 없었기에, 저는 다시 임용고시 준비로 발을 돌렸습니다. 아이들과 일상을 나누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지금의 교직 생활에 만족하지만, SNS에 뜨는 영어 앵커들을 볼 때면 가끔 “그때 계속 밀어붙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며 제가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제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도전하지 않았던 것도 저의 선택이었기에 미련은 없지만, 우리 아이들도 한 번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그 환희의 순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찾아줘’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묻기로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왜 그걸 좋아한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자신과 더 친해지기를 바랐습니다. 가치 월드컵, 인생 그래프 그리기, 나의 묘비석 만들기, 뇌 구조 그리기, 만다라트 계획표 세우기, 나를 알아가는 백문백답 등의 활동들을 찾고 구상하여 100쪽짜리 교재를 제본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는 두 단어를 강조했습니다. ‘왜?’와 ‘그냥’, 한 가지는 아이들이 많이 써야 할 말이고, 하나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할 말이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고, 귀찮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습관처럼 “그냥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일지라도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에, 스스로가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맡지 않는 해에는 담임 학급의 조회 때 주어지는 10분의 시간을 짬짬이 활용해서 이 수업에서 했던 활동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파견 생활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자유학기 수업이나 조회 시간을 통해 또 아이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이 수업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과거엔 비록 ‘진로에 실패한 청소년’이었을지라도 지금은 ‘성공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교원대 학우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 얼마나 친한가요? 그리고 지금, 정말로 여러분이 원하는 꿈을 향해 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