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호/컬처노트] 여전히 꽃잎 같고, 여전히 꿈을 꾸는 당신에게, “폭싹 속았수다”

2025-04-27     정경진 기자

우리의 삶은 힘든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문학소녀 애순이의 삶을 통해 그 힘을 보여준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을 가진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을 통해 아무리 힘들어도, 아프고 외로워도 결국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위로를 건넨다. 이 이야기는 모든 평범한 삶에 대한 찬가이다. 그 삶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을 건네며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애찬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메인 포스터 (사진 / 경기신문 제공)

그 어느 겨울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살민 살아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1950년대 제주에 사는 가난하고 불쌍한 문학소녀 애순과 묵묵히 그 곁을 지키는 무쇠 같은 남자 관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순의 어린 시절부터 관식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삶의 모습은 때로는 애처롭고, 때로는 찬란하여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인생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인생은 봄 안에도 겨울이 있고, 여름과 가을이 함께 머물며 더욱 다채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고단한 매일을 살아가면서도 결코 따스함을 잃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며, 고단한 삶이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애순과 관식의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어디에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춘다. 딸 금명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는 애순에게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관식에게서, 고맙다는 말보다 늘 짜증이 앞서는 서툰 금명에게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소한 수고로운 시간은 살민 살아진다는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흰 눈이 세상을 덮듯이 세월이 소란한 슬픔을 덮고 완연한 겨울이 왔다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사이, ‘가족

살민 살아진다는 다정한 위로 속에서, 그들에게는 살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애순과 관식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닌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자식의 봄을 위해 그들은 자신의 봄을 바쳤다. 드라마 속 애순과 관식의 모습에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가슴 깊이 와닿아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극 중에서 금명이가 속이 다쳐 집에 돌아오자, 애순과 관식은 금명이의 속이 헛헛하지 않도록 계속 뭔가를 먹이는 모습을 보인다. 부모는 늘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당신의 속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내 속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은 당신의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파한다.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늘 밑을 내려다보면 그물을 펼치고 서 있는 당신이 있다. 다정하지도, 따스하지도 않은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늘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금명이에게 애순과 관식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엄마의 씨앗을 품고, 아빠의 푸름을 먹고 나무가 되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날에야 아빠 미안해, 미안해다급한 사과들을 쏟아냈다. 그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노라고.”

아빠에게 딸은 그 존재만으로 살아갈 힘이 나게 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1번인 것 같다. 천국, 나는 아빠의 천국이었다. 딸에게는 늘 다정한 아빠가 있지만, 아빠에게는 다정한 딸이 없다. 나는 그의 천국이 되었다는 안온함에 다정하지 못했다.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깊은 존경을 담아 폭싹 속았수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미안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늘 서운하다. 나의 서운함은 마음을 꾹꾹 덮어 미안함과 감사를 묻는다. 항상 그냥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데, 그 한마디가 밖으로 나오면 늘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또 미안해졌다. 한순간도 빠짐없이 따스했던 당신에게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나왔다.”

자식에게는 부모의 삶보다 나의 삶이 우선이다. 부모에게는 당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우선이다. 그렇게 늘 당신은 나를 위로하지만, 우리는 내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힘들다는 인색한 투정 속에서, 당신의 삶을 위로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한 계절을 보내왔을 그들에게,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용기를 가진 터라, 잠시 이 말을 빌리고자 한다.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깊은 존경을 담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