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호/컬처노트] 여전히 꽃잎 같고, 여전히 꿈을 꾸는 당신에게, “폭싹 속았수다”
우리의 삶은 힘든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문학소녀 애순이의 삶을 통해 그 힘을 보여준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을 가진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을 통해 아무리 힘들어도, 아프고 외로워도 결국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위로를 건넨다. 이 이야기는 모든 평범한 삶에 대한 찬가이다. 그 삶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을 건네며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애찬한다.
◇ 그 어느 겨울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살민 살아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 제주에 사는 가난하고 불쌍한 문학소녀 ‘애순’과 묵묵히 그 곁을 지키는 무쇠 같은 남자 ‘관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순의 어린 시절부터 관식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삶의 모습은 때로는 애처롭고, 때로는 찬란하여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인생은 봄 안에도 겨울이 있고, 여름과 가을이 함께 머물며 더욱 다채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고단한 매일을 살아가면서도 결코 따스함을 잃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며, 고단한 삶이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애순과 관식의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어디에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춘다. 딸 금명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는 애순에게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관식에게서, 고맙다는 말보다 늘 짜증이 앞서는 서툰 금명에게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소한 수고로운 시간은 ‘살민 살아진다’는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흰 눈이 세상을 덮듯이 세월이 소란한 슬픔을 덮고 완연한 겨울이 왔다”
◇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사이, ‘가족’
‘살민 살아진다’는 다정한 위로 속에서, 그들에게는 살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애순과 관식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닌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자식의 봄을 위해 그들은 자신의 봄을 바쳤다. 드라마 속 애순과 관식의 모습에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가슴 깊이 와닿아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극 중에서 금명이가 속이 다쳐 집에 돌아오자, 애순과 관식은 금명이의 속이 헛헛하지 않도록 계속 뭔가를 먹이는 모습을 보인다. 부모는 늘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당신의 속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내 속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은 당신의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파한다.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늘 밑을 내려다보면 그물을 펼치고 서 있는 당신이 있다. 다정하지도, 따스하지도 않은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늘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금명이에게 애순과 관식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엄마의 씨앗을 품고, 아빠의 푸름을 먹고 나무가 되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날에야 ‘아빠 미안해, 미안해’ 다급한 사과들을 쏟아냈다. 그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노라고.”
아빠에게 딸은 그 존재만으로 살아갈 힘이 나게 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1번인 것 같다. 천국, 나는 아빠의 천국이었다. 딸에게는 늘 다정한 아빠가 있지만, 아빠에게는 다정한 딸이 없다. 나는 그의 천국이 되었다는 안온함에 다정하지 못했다.
◇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깊은 존경을 담아 ‘폭싹 속았수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미안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늘 서운하다. 나의 서운함은 마음을 꾹꾹 덮어 미안함과 감사를 묻는다. 항상 그냥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데, 그 한마디가 밖으로 나오면 늘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또 미안해졌다. 한순간도 빠짐없이 따스했던 당신에게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나왔다.”
자식에게는 부모의 삶보다 나의 삶이 우선이다. 부모에게는 당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우선이다. 그렇게 늘 당신은 나를 위로하지만, 우리는 내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힘들다는 인색한 투정 속에서, 당신의 삶을 위로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한 계절을 보내왔을 그들에게,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용기를 가진 터라, 잠시 이 말을 빌리고자 한다.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깊은 존경을 담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