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호/사설] 학교의 역할
2024년 2학기를 마치며 학교에서는 기말시험 주간에 학부생 대상의 외국어 교육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을 모신 강연회가 있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통번역 기술의 획기적 발달, AI가 제공하는 흥미진진한 가상의 학습 세계 등등, 이제까지의 학교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이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학교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아니 정말 학교가 필요할까?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로 학교는 우리에게 더욱더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토크콘서트 마지막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연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급속도로 발달하는 AI 시대,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영어 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입시라는 틀 속에 갇힌 학교에서 교사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필자는 교육자로서 본래 학교는 사회의 어떤 압력에서도 자유로운 곳으로, 교사는 어떤 식으로든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이 가르치는 교육 현장을 신바람 나는 학습 공간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여기에서 우리는 학교는 더 이상 어떤 기술이나 지식을 가장 잘 가르치고 전수해 주는 곳이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물론 학교가 삶에 도움을 주는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교사의 창의력은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오늘날의 학교는 다양한 이유로 학습 장애가 있는 아동을 배려하고 이러한 배려심을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더 이상 한국 학생과 다문화 학생(외국 학생), 정상 아동과 장애 아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지 말고, 여러 차원의 다양성, 특히 학습 장애를 가진 아동을 찾아내고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와 학교 현장에서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느린 학습자’에 논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학습 장애를 가진 아동의 지도 방법에 대한 교육이나 연수는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진 교사에게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에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비) 교사는 기존의 커리큘럼 내에서 학습자의 다양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의미 있는 수업 활동을 고안할 뿐만 아니라 그 실행 결과를 동료 (예비) 교사와 기꺼이 나눌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학습자의 다양성 파악에는 긴 시간이 걸리며, 이와 관련된 수업 활동의 고안 역시 매우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기 전에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남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면 그 어려움을 겪어봐야 한다. 우선, 지금 나의 위치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들이 가진 다양성을 떠올려보자. 특히 ‘나와의 다름’으로 인해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내가 변한다면, 새롭게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자.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새 학기에 우리가 신입생에게 무엇을 전해줄지, 또 동료 학우에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할지에 대해 조금은 고민하는 남은 방학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