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호/교수의 서재] 자신의 삶을 항해하는 ‘고래’가 될 수 있기를

2024-10-14     이아영 기자

최근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미를 의미하는 추구미라는 신조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 ‘내 삶의 추구미는 무엇일까?’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일 것이다. 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초등교육과 김아영 교수와 함께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읽으며 자기 자신만의 모습은 무엇이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고래 (사진/ 교보문고 제공)

 

Q1. 교수님께서 최근 인상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이 질문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평범하고 명료한 질문을 주셨지만, 최애 중 최애를 선별해야 하는 것은 참 어려워요. 저는 교훈이 되는 인생 책을 추천하기보다는 학생들이 호감을 느끼고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을 추천하려고 해요.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몇 번이고 반복하여 보는 소설 중 인상 깊은 소설이 있어요. 바로 천명관 님의 고래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천명관이라는 희대의 이야기꾼이 쓴, 한국전쟁 전후에 평대라는 가상 마을의 국밥집 노파와 그녀의 딸 애꾸, 금복, 그리고 금복의 딸 춘희가 등장하는 서사예요. 그 서사에는 사랑 복수 저주 배신 폭력 죽음 정사 등 온갖 도파민을 유발하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고래가 얹어졌어요. 실제 고래를 보기도 하고 고래같이 큰 욕망과 체격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만나기도 하고 고래 모양의 영화관을 만들기도 해요.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이 소설은 2004년에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어요. 당연히 서점마다 즐비하여 전시하였겠지요? 그래도 서점에 즐비한 모든 책을 펼쳐보지는 않는데, 이 책은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표지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제목 자체가 주는 심상은 심해의 바다에서 유영하는 푸릿푸릿 또는 푸르스름한 고래인 것이 분명한데, 표지는 불그죽죽하면서 출렁출렁하게 그려 놓았거든요. 얼마나 궁금해요. 표지 작가님이 작품 해석을 잘못했든가, 아니면 푸르스름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불그죽죽한 표지를 그릴만한 사정이 있는 작품이든가 둘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책을 펼쳤고, 첫 장부터 매혹되었고, 결국은 저의 최애 작품 중 하나가 되었어요.

 

Q3.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일단 재밌어요. 재미있고 충격적이에요.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어떤 시점에서 보자면, 각 작품이 비슷한 플롯과 클리셰를 반복한다고 느껴져서 어느 순간에는 새롭게 읽을만한 이야기가 없다라는 건방진 생각에 도달한다고요. 그런데 이 고래는 여느 작품들과 비슷한 플롯이나 클리셰가 활용되지 않아요. 충격적일 정도로 해학적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이에요. 작품 자체도 다면적인데, 영화감독을 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도 다면적이고 작품 속 인물도 다면적이에요. 특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금복과 춘희는 단적으로 보았을 때, 마치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에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기는 모호한데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하거든요. 그런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 어디에도 있는 인물로 보여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이지요.

완전히 악하거나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적이거나 완전히 폭력적이거나 완전히 무고한 인물이 없고, 완전히 영원한 관계도 없어요. 완전히 행복한 삶이나 완전히 행복한 해피엔딩도 없고요. 그렇다고 새드 엔딩이라고 하기도 모호해요. 사실 일생을 펼쳐놓으면 어느 것 하나 파격(破格)이 아닌 것이 없잖아요. 또 만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간은 일면적이기보다 다면적이잖아요. 이런 파격적·다면적 이야기가 주류 문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멋있어요. 특유의 아집을 가진 기성 전문가 집단(또는 전공 집단)도 많은데, 파격을 시도한 비전공·비전업 작가를 새로운 고수로 인정하다니! ‘문학동네평론가 집단의 배포도 참 남다르다고 생각했지요.

 

Q4.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가의 어떤 표현은 이것이 과연 뇌를 거쳐 나온 표현이 맞는가?’는 의문이 들 만큼 우당탕탕 다짜고짜 던져져요. 소문의 법칙 이념의 법칙 아랫것의 법칙 사랑의 법칙 의처증의 법칙 거리의 법칙 작살의 법칙 구라의 법칙 지식인의 법칙 독재의 법칙 생식의 법칙 등 오만 법칙을 늘어놓기도 하고요. 작가가 그린 것이 분명한 펜 그림도 종종 등장하거든요. 그렇지만 독자들은 그렇게 던져지는 법칙과 그림 등이 서사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설득되어요. 아니, 그보다는 작가의 표현들이 거침없고 뻔뻔하여 독자가 이런 게 원래 가능한가 보다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고 할까요? 저는 그중에서도 춘희가 그린 꽃 그림이 인상 깊었어요. 맨부커상 최종 후보까지 올라간 활자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써, 활자가 아닌 그림을 언급하도록 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춘희의 꽃 그림 (사진/ 브런치스토리 려원 제공)

 

Q5. 이 책은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책을 안 읽은 지 오래된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특히 종이에 얹어진 활자를 강의 시간 외에는 만날 일이 없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일부러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책을 소개한 것도, 학생들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요즘 재밌는 책 정말 많아요. 온라인으로 글을 읽을 기회가 다양해져서 그런지 온갖 재야의 이야기꾼들이 몰려나와 상상력을 뽐내고 있어요. ‘고래를 시작으로 종이책 읽는 재미에 빠지시면 좋겠어요. 책 넘기는 소리를 BGM 삼아서요. 종이책과 멀어진 대학생이라니앙꼬 없는 찐빵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대학은 모름지기 베개를 대체할 만큼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소설 고래에 나오는 인물들이 매우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우리학교 학생들도 자신의 다면성과 입체성을 다양한 기회를 통해 찾아내면 좋겠어요. 전공과 무관한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해보고요, 천명관 작가님처럼 한 분야의 고수가 되어 당당하게 기존 전문가 집단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기도 하고요. 우리 대학이 교원 양성 대학이지만, 모두 반드시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모두 교사가 되더라도 각자의 삶의 모습은 다 다르겠지요.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계발하고 발굴하는 것을 미루거나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