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호/사무사] 신뢰(信賴)는 어디에서 오는가

2024-09-09     편집장

2023719일 한반도 폭우 사태의 피해 지역인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작전 중, 급류에 휩쓸려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 일등병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단장의 지시 사항이라는 이유로, 수색 비전문 병력이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못한 채 작전을 수행하다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이는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이며, 언론에서는 약칭하여 흔히 채 상병 사건이라고 부른다.

2022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대 내에서 발생한 과실치사와 같은 사망 사건이 발생할 경우, 외부 기관으로 사건을 이첩(移牒)해야 한다. 해당 내용은 군사법원법2283군검사와 군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재판권이 군사법원에 있지 아니한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건을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해당 사고 역시, 관할 경찰인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이첩된 사건 서류를 회수하였다. 해당 사건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군대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이다. 해당 사건은 결국 수사 과정에서 수사 외압 논란까지 불거졌다. 결국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하는 특별검사 임명 법률안인 채상병 특검법이 발의되는 등 사건 발생 1년이 넘어간 현재까지 수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해당 사건이 원활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사건의 본질에 흐려져 여당과 야당 사이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진 점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분노를 산 건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의 탄원서 내용이었다. 해당 탄원서엔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는 표현이 있었다. 당시 전시상황(戰時狀況)도 아니었다. 하지만,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못한 채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간 이번 사건에 대해, 탄원서에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입대할 땐 우리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 병역의무를 수행하던 중 피해를 볼 시 이에 대한 후속 대처의 미약함을 비판하는 말이다. 군대 내 사건·사고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훈련을 가장한 가혹행위로 인한 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태백 혹한기 훈련 이등병 사망 사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 및 예방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후속 대처는 조속히 진행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 채 상병 사건역시 부적절한 인력 보충 및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 장비 착용 없이 임무를 수행하다 발생한 사고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확실한 대책은 제시되지 않은 채, 군대 내 사건·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5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군인은 투철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국가방위와 국민의 보호를 사명으로 한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사고는 반복되고, 관련한 후속 대처는커녕 은폐 시도가 꾸준히 들려오는 군대에서 그 누가 희생을 하겠는가.

변화해야 한다. 사건·사고가 발생하여도 숨기려 하기보다 적절히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장두노미(藏頭露尾), 진실은 숨기려고 해도 결국 드러나게 된다. 은폐하고, 속이는 행동에선 우리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신뢰는 진실된 행동에서 비롯된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희생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군대 내 사건·사고가 단순 군대 내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