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호/독자의시선] 사랑을 설명하는 방법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최우혁(화학교육·16) 학우
내가 왜 좋아?
이만큼 어려운 질문이 없다. 대체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그냥’이었는데, 경험상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머리 굴리느라 이 질문에 당당히 즉답한 기억이 없다. 내 대답은 항상 모양이 빠졌다. 여느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랑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게 모범 답안일까? 그 시점에야 진실하겠지만 영원함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순간들의 나열은 부족한 답변이다.
이유가 전부는 아닌 이유
사랑했던 이유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같은 현상에 대한 진술이 변한다. 맑은
말투가 좋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의 말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꾸밈없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들떴는데 이젠 그 호탕한 데시벨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연애 초기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진지하지 않은 태도에 질려버린다. 그 사람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한다. 그러니 문장으로 만들어진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모양 빠지는 대답에 대한 변
《이터널 선샤인》의 연인들이 그렇다. 그들이 전달받은 테이프에는 서로의 험담이 녹음되어 있다. 하지만 둘은 변하지 않았다. 클레멘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레멘타인이었고, 조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엘이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끌렸던 이유가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왜 좋아?’는 이유가 선행하고 그 결과로 사랑이 있다고 전제하는 질문이다. (또는 거절의 시동이다.) 내 이론은 정반대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유들이 생긴다. 물론 이유는 안정감을 주고, ‘그냥’은 절대 최고의 대답이 될 수 없다. 다만 완벽히 설명되는 사랑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원인이 규명된 사랑은 그 원인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들의 사랑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다.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사랑하는 이유였다. 시간이 지나고 둘은 사랑하지 않게 되었고, 모든 것은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기억을 지우니 그들은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시 사랑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니까,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이유가 있어서 사랑한 게 아니다.
결국 그들은 행복했을까? 사랑에 이유가 있다면, 헤어지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그럼 같은
이유로 사랑에 빠졌으니 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질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그래서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잊었지만 사랑에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조금 더 편안하고 깊은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