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호/컬처노트] 아픔이 길이 될 수 있기를

2024-05-27     정경진 기자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는 사회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사회역학의 관점을 통해 여러 연구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을까’, 기술과 의료의 발전은 이 질문의 해답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호 컬쳐노트에서는 정의로운 건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사진 / 교보문고 제공)

 

사회역학, ‘사회구조적 원인에 주목하는 학문

심장병에 걸리면 병원에서는 비만과 흡연 등 잘못된 개인 습관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당한 억울한 해고가 그 병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쌍용차 해고 세월호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낙태 동성애 등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사회역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여 건강과 사회가 맺는 밀접한 관계와 제도가 사회적 약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역설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개인의 기록이 아닌, 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역학적 기록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슬픔이 길이 되기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009, 노동자 2,646명이 해고통지서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죽은 자가 되었고, 이는 서서히 노동자들의 삶을 앗아갔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소방공무원의 목숨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20144,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고통이 우리나라를 덮쳤다. 202210, 모두에게 축제였어야 할 날이 애통의 울음으로 뒤덮였다. 우리나라는 지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재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재난을 겪은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 나갔는가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참담했다고 한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의 슬픔이 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아픔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는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너무나 쉽게 다른 이의 상처를 비웃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의 비를 내가 멈출 수는 없지만, 함께 그 비를 맞아줄 수는 있지 않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지,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하지만 우리는 다음 세상을 살아갈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공부하고 사유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가요?’ 혹자는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엔 개개인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기를, , 그리고 당신 또한 그러기를. 이로써 우리의 공동체가 안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