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호/교수의 서재] 다가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24-05-13     김재하 기자

우리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것들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매일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맛있는 식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화장품과 의약품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오기 전에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 ‘동물’들이 있었다. 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윤리교육과 김일수 교수와 함께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으며 동물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성찰해 보자.

윤리교육과 김일수 교수 (사진 / 김재하 기자)

 

Q.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피터 싱어가 쓴 《동물 해방》이라고 하는 책인데요. 피터 싱어는 아마 많이 들어본 사람일 거예요. 호주 출신의 철학자이고, 현재로서는 실천윤리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동물 해방》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쓴 책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요. 

먼저 우리 인간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종이나 성별과 같은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편견을 갖거나 차별을 해왔던 것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죠.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인류가 어느 정도 도덕적인 진보를 경험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종이나 성별에 의한 차별’이 우리 인간이 종식시켜야 할 마지막 부당한 차별이라는 것이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고정적인 생각들에 충격을 가했던 책이 《동물 해방》입니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싱어는 앞서 말했던 인종, 성별에 의한 차별과 마찬가지로 부정의한 형태를 갖춘 관행이 여전히 아무런 비판적인 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듯 그것은 곧 동물에 대한 태도가 되겠죠. 한편으로 우리 인간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익이나 고통에는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물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나 이익에 그야말로 ‘무관심’한 여러 가지 관행들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윤리적인 과제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읽게 되셨나요?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이라는 책을 쓴 것은 제가 태어나기 이전인 1975년이에요. 제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부 때였던 것 같아요. 학부 때 제가 윤리교육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터 싱어라고 하는 학자의 이러한 주장을 접했는데, 그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전통적으로 ‘윤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만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었는데 이 책이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번역서가 나와 있지 않는 상태여서 학부 때는 《동물 해방》에서 피터 싱어가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장 정도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꼼꼼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물 해방》이라고 하는 책이 학문적인 차원에서 조금 수준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중간중간에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동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당한 관행의 사례들을 제시해 주고 있어요. 예컨대 우리가 육식을 접하는 것은 식당에서 전부 조리가 된 상태이거나 마트에서도 사실은 어느 정도 도축 이후에 가공이 된 상태이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 동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길러지고 도축이 되는지는 정확히 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알지 못했던 숨겨진 관행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동물 실험의 끔찍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굉장한 충격을 느끼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제가 그동안 동물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죠.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사육이 되어 우리 식탁으로 올라오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런 차원에서 《동물 해방》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반성을 주기도 했던 그런 책입니다.

 

Q. 이 책이 나왔던 시기가 1975년이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주장으로 느껴지는데요. 

그렇죠. 1975년이면 당시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동물을 윤리적으로 고려한다거나 대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표현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효율적인 생산만을 생각해서 동물의 삶의 공간이나 복지와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던 관행들이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그게 왜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시기가 아마 이 시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앞서 이야기했던 인종이나 성별과 같은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시기란 말이에요. 20세기 중반이니까 어쩌면 이 시기에 인종이나 성별과 관련된 문제도 미국에서는 이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잘못된 차별이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 막 초창기에 진입할 시기였어요. 그때 한발 더 나아가서 동물 해방의 비전을 이 시기에 제기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피터 싱어가 가지고 있는 급진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죠.

 

Q. 굉장히 멀리 보았던 학자였군요. 하지만 싱어의 이런 주장이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싱어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시나요?

사실 아주 큰 차원에서는 윤리에 다양하게 접근하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사회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거나,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명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이 될 텐데, 이런 측면에서 한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윤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논리를 그대로 가져간다면 꼭 그 생각의 범위를 사람에만 한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물의 경우에는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거죠. 내가 이만큼 고통받고 있다, 이만큼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인간은 동물의 이러한 고통과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처럼 인간 존재에서 더 나아가 동물에게까지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윤리적인 시각을 넓히는 데에 싱어가 준 영향이 크고, 또 그 지점에서는 분명히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피터 싱어의 주장 자체가 논리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급진적인 부분이나 성격도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피터 싱어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따라가기가 어려운 관행 중 하나는 아마 육식일 것 같아요. 전 세계적으로 오래된 문제이기도 하고, 육식과 관련된 산업 구조나 체계 등과 관련해서는 워낙 복잡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싱어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해서는 저도 크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Q.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저도 피터 싱어의 주장을 듣고 동의를 해서 가장 실천할 수 있는 것 중 첫 번째가 육식과 관련된 것이라 채식을 한번 해봤어요. 하지만 정확하게 일주일밖에 하지 못했어요. 핑계라면 핑계이겠지만, 참 어렵더라고요. 회식과 같이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해야 할 때, 채식으로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어려운 점들이 있고, 가족 모두가 채식주의자라면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 혼자 채식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완전한 채식을 하는 게 어렵다고 해서 ‘난 안 되는구나’하고 완전히 포기할 건 아닌 것 같아요. 최근 학교들에서도 실제로 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채식의 날’로 정해서 고기를 안 먹을 수 있죠. 아니면 고기를 먹는 양을 조금 줄여볼 수도 있습니다. 또 최근에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동물복지 인증 마크’입니다. 보다 윤리적인, 동물 친화적인 방식으로 사육된 동물이 재료가 된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말하는 것인데요. 만약 고기를 먹더라도 그런 제품들을 구매하는 것도 어쩌면 싱어가 원했던 바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완전한 채식이 어렵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 해방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이 책과 관련해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열악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그 어려움을 호소할 수 없는 약자에게 주목한 피터 싱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교실 현장에도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있어요. 제 교사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일단 교사의 눈에 가장 많이 띄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친구들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먼저 교사에게 다가오기 어려운 성격이나 조건에 있는 학생, 본인의 처지를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학생들도 있어요. 

《동물 해방》이 저에게 준 가르침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교사가 먼저 손을 내밀거나 이야기를 건네는 방법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한 해가 되도록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왕왕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각자 훌륭한 교사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하지만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