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호/사회] 계속되는 하이브-민희진 공방 … ‘멀티 레이블’ 체제의 위기인가

‘랜덤 포토 카드, 밀어내기’ 등 K팝 산업 병폐 조명

2024-05-13     김재하 기자

지난 4월 22일, 하이브(HYBE) 측이 자회사 어도어(ADOR)의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며 내부 감사 후 고발하였다. 이에 민희진 대표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였고, 이후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 간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포함한 어도어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고 있으나,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갈등의 끝은 다시 불투명해지고 있다. 

 

◇ 하이브, 민희진 대표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 … 내홍 속 하이브 주가 약 15% 하락

어도어는 2021년 하이브가 자본금 154억 원을 출자해 만든 레이블로, 첫 아이돌인 ‘뉴진스’가 인기를 끌며 지난해 매출액 1,103억 원의 기획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하이브 측은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어도어에 대한 내부 감사에 나섰다. 이후 25일, 하이브 측은 민 대표를 서울 용산경찰서에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업무상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를 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 성립된다.

25일, 민 대표 측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 측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2시간가량 이어졌던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시도를 포함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오히려 뉴진스의 데뷔나 활동 등에 대해 하이브의 방해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다음날인 26일에는 하이브 측에서도 민 대표의 주장을 12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고, 이달 2일에는 다시 민 대표 측이 하이브의 주장에 재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러한 갈등 과정에서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1조 2천억 원가량 증발했으며, 연초 이후 주가는 15.32% 하락한 상태이다.

 

◇ 민 대표, 하이브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 … 이달 31일 임시주주총회 개최 예정

하이브 측에서는 민 대표를 포함한 어도어의 경영진을 교체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하이브는 22일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 교체를 위한 이사회 소집을 어도어 측에 요구했으나, 어도어 측이 불응하자 25일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신청했다. 심문기일은 30일로 정해졌고, 민 대표가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예정일에 그대로 진행되었다.

민 대표 측은 7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하이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어도어 측은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 겸 사내이사의 해임 안건에 대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한 바 있는데, 민희진 대표와 체결한 주주간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래 하이브가 어도어의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어 민 대표의 해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민 대표의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안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민 대표의 해임 여부는 다시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도어 측은 10일 이사회를 개최하여 오는 31일에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의한 상황이다. 이번 임시주주총회에서 실제로 어도어 경영진이 하이브의 방침대로 교체될 것인지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 ‘앨범깡’, ‘미끼 상품’ 등 K팝 산업의 병폐 조명돼 … 허점 드러난 ‘멀티 레이블’ 체제

하이브와 민 대표 사이의 공개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 대표가 25일 기자회견에서 했던 발언들로 인해 K팝 업계의 여러 병폐도 조명받고 있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업계가 ▲랜덤 포토 카드 ▲밀어내기(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의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이 주목받게 되면서 팬 사인회 당첨 등을 위해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이른바 ‘앨범깡’을 하는 팬덤 문화, 앨범 판매를 위해 끊임없이 ▲미공개 포토카드 ▲럭키 드로 등의 ‘미끼 상품’을 끼워 넣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행태에 자성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소속사를 인수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로 몸집을 키워온 하이브에게 체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이브는 현재 ▲빅히트뮤직 ▲플레디스 ▲어도어 ▲쏘스뮤직 ▲빌리트랩 등 총 11개의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멀티 레이블 체제가 가진 구조적 모순이 이번 사태를 촉발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멀티 레이블 체제의 장점 극대화를 위해서는 각 레이블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배구조의 존속을 위해서는 레이블들에 대한 통제 강화도 필요한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 박지원 CEO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멀티 레이블의 길을 개척하며 난관에 봉착했다”라며 “고도화를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