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호/독자의시선] 교차 외 2편

이준수(일반사회교육·24) 학우

2024-05-13     한국교원대신문

<교차>
202441608:48

400mm가 조금 넘고 세 시 방향 여덟 뼘 정도 그보다 조금 더 좁은 지금의 바로 곁에 살짝 밀려나 있는 점 위축이 교차하는 점 위에 버티며 서다

현재 시각 202441608:48

 

<침몰>

얕디얕은 백지장 위에 선 발밑엔 과거, 거창하게는 역사라는 이름의 새하얀 종이 뭉치들이 한 10년 치는 쌓였나 보다. 문득 그 고도에. 그 위태위태함에 살짝 현기증이 날 때쯤. 아마 그때쯤. 울컥 먹이 뿜어진다. 스며든다. 백지장을 검게 물들이며. 서서히. 발가락 사이사이 파동이 느껴진다. 강약과 리듬 사이. 묘한 생명의 울림을 느낀다. 발끝은 이미 검고 축축하다. 허나 떠나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망칠 수 없다. 도망가지 않는다. 이미 발목을 다 적신 지 오래. 파도처럼. 사늘한 물결을 느낀다. 아아아! 나 또한 이미 쌓이고 쌓이고 쌓인 넋이라도 되리라!

 

<10, 그리고 나>

10. 당시 나에겐 멀디먼 형, 누나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몇 년 새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이윽고 나는 그들이 미처 도달할 수 없었던 나이가 되었다. 20. 법적인 성년의 나이이다. 그제야 나는 그들의 고통의 일부분이라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계기는 올해 접한 한 영화에서부터였다. 지극히 일상적인.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풋풋한 첫사랑, 사소한 다툼과 화해, 따뜻한 봄바람...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삶이 나에게로 침투해 올 때야 비로소, 머리끝까지 슬픔과 고통이 사무쳐 올라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무심히 하루하루 넘겨왔던 날들이 왠지 부끄러워졌다. 내가 무심코 넘긴 타인의 죽음 또한 많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같은 학교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떠오른다. 그 친구의 얼굴도, 목소리도 알지 못했지만, 추모 편지를 절실히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며칠 만에 그 사건은 까맣게 잊고 지금까지 지내왔었던 것 또한 기억난다. 시를 한 자 한 자 적으며 나 자신을 반성해 보고, 또 내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만 같다.

 

우리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생이다. 이중 다수는 예비 교사로서 자질을 갈고 닦아 전국의 교육 현장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렇지 않은 학우들 또한 4년간 교육에 대한 가치와 그 단어의 무게감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10주기에는, 만약 이제까지는 그러하지 못하였더라도 이번만큼은 그들을 위해 누구보다 마음 아파할 수 있는, 더욱 성숙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생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