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호/독자의시선]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김하민(역사·23) 학우

2024-04-29     한국교원대신문

이름을 잘 기억하지를 못합니다. 처음 봐도 얼굴은 잘 기억하는데 말이죠.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막상 호명하려 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곤 합니다. 그렇기에 일상을 살아가며 때때로 좀 민망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가령 함께 팀플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이름을 알지 못함에도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친구!’라고 뭉뚱그려 부르거나, 아니면 주어를 생략해 말하거나, 도리어 애매해질까 걱정되는 마음에 입을 꾹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참 재미있는 건, 이게 한번 두번 하면 점차 익숙해지고, 그럴수록 죄책감(?)도 옅어지는 탓에 막 남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저는 친구라는 단어로 마음속 진한 선을 그어놓는 게 아닐까요? 내가 선을 그으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게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어 얼굴이 오래간만에 잔뜩 붉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불쾌할까 봐, 반대로 너무 멀면 외로울까 봐. 항상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그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탓에 하루가 종일 울렁거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딱딱 맞아떨어진다면 얼마나 편할 텐데 말이죠.

어쩌면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받을 것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를 아픔에도 호의적으로 다가서는 건, 결코 용기가 없고서 불가능하니까요. 되돌아보면 용기는 그 정도는 괜찮다라는 안심에서 자라나는 듯합니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궁지로 몰아넣지 않는다는, 혹여 있더라도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마음은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 평온했기 때문이죠.

돌고 돌았지만, 결국은 마음의 차이입니다. 많은 경험으로 더욱 넓은 크기를, 깊은 지식으로 더욱 그윽한 깊이를 가져야겠습니다. 그 순간의 아픔도, 어쩌면 내 마음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성장통이 될 테니까요.

내일에는 좀 더 많은 친구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그 친구들이 편안해지는 존재가 되는 건 물론이고, 그들에게 저 또한 더욱 편안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