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호/교수의 서재] 완연한 꽃을 피울 가능성, ‘미생(未生)’

2024-04-29     박진희 기자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바둑판에서 미생은 한 집뿐인 상태를 말하며,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기에 미생은 표상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생은 완전히 죽은 돌과는 달리 완생할 여지를 지닌다. 미생은 이처럼 아직은 불완전하고 미숙하지만, ‘자신의 삶을 승리하기 위해 한 수 한 수 돌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493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바둑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지만 입단하지 못해 바둑을 그만두고,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국어교육과 윤천탁 교수의 서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국어교육과 윤천탁 교수 (사진 / 박진희 기자)

 

Q1.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많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을 꼽으라면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모은 책인 미생(未生,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을 떠올립니다. 이 책은 시즌 12로 나뉘는데, 시즌 19, 시즌 213권으로 총 21권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시즌 1은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바둑을 열심히 배웠으나 입단에 실패한 후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종합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장그래가 영업 3팀에서 근무하면서 직장 상사인 오상식’, ‘김동식등과 한 팀을 이루어서 상사맨으로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그래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여러 성과를 거두는 데도 기여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걸 기대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퇴사하게 됩니다. 영업 3팀의 팀장이었던 오상식은 대기업 상사맨보다는 자기만의 일을 꾸려 나가기 위해 대기업을 퇴사한 후 과거 상사로 모셨던 선배와 함께 퇴직금을 모아 중소기업(온길 인터내셔널)을 차리게 되고 이 중소기업의 직원으로 김동식과 장그래가 합류하면서 시즌 1은 끝이 납니다.

시즌 2는 중소기업 직원으로서 대기업과 경쟁하고 주변의 중소기업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10명 이하 소규모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한 수입원을 확보해야 해서 돈이 될 만한 사업을 발굴하고 꾸준히 사업이 유지되고 확장되도록 노력하면서 겪게 되는 성공과 좌절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즌 1에서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른 장그래라고 표현될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장그래가 결국은 오상식 등 직장 상사들의 신망을 받아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면서 시즌 2가 마무리됩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읽게 되셨나요?

원래 웹툰은 2012년부터 웹상에 게재되었고 시즌 1의 게재가 마무리된 후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2014년에 방영되어 굉장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먼저 시청했는데, 드라마의 원작이 웹툰인 걸 알게 됐고 웹툰이 책으로 발행된 후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기 시작한 것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 주로 있어야 하는 코로나19 시기였습니다. 드라마와 실제 원작의 차이를 느끼고 싶어서 단편적인 웹툰을 웹상에서 보지 않고 책을 한 권씩 사 모으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즌 22015년부터 웹상에 게재되었으나 중간에 윤태호 작가의 개인 사정 등으로 원활하게 게재되지 않았다가 20242월에 시즌 2가 마무리되면서 완결된 내용의 책이 나오게 되었고 올해 3월에 발행된 21권까지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어휘 교육을 전공해서 관객을 많이 동원한 영화의 대사에 나온 어휘를 살펴보고 독자가 많았던 책에 나온 어휘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 왔는데, 미생은 웹툰을 본 사람도 많고 각색된 드라마도 많은 인기를 얻어서 미생 신드롬이라는 말도 생겼기에 완결된 책을 읽고 어떤 표현들이 쓰였는지를 정리하면서 읽는 재미가 컸습니다. 바둑에서 유래된 여러 용어(대마불사(大馬不死), 묘수(妙手), 선수(先手), 자충수(自充手), 호구(虎口), 완생(完生) )와 종합상사의 직장인들이 쓰는 전문어 등도 정리하며 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Q3.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이 책에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다”, “나의 바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등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바둑으로 비유했을 때, 나는 앞으로 어떤 바둑을 두면서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평소 생각한 것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나 실적 등을 가로채서 상사의 진급을 밀어주는 것, 맞벌이 부부인 경우 남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이 양보하거나 희생하는 걸 당연시하는 것, 나보다 뛰어난 부하 직원이 들어왔을 때 함께 성장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기를 꺾어나 권위로 억누르는 것, 회사 직원의 비리를 발견했을 때 회사를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절차대로 처리하여 용기를 발휘하는 것, 자신이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결재선에 사인했다는 이유로 책임질 일에 대해서 과감하게 책임을 지고 한직으로 물러난 것,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함께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 남을 설득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면서 팀원이 합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가족도 챙기지 못하면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가 과로사했는데 회사에서는 산재 처리를 꺼리는 것 등등

이런 여러 에피소드 중 제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제 상황에 닥쳤을 때 주저 없이 실천하도록 하는 데 이 책은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도 우리학교에 오기 전에는 국책연구기관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을 했었는데, 출장비나 개원 기념 선물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것과 같은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 제가 정규직이 되면 약자를 먼저 챙길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그런 생각을 굳게 먹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4.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여러 권의 책에 많은 내용이 실려 있어서 뭘 하나 꼽기는 어렵지만 하나를 꼽자면 21권에 나온 내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장그래가 바둑을 배운 사범님께 최고의 바둑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묘수가 가득한 바둑도 보는 재미가 있겠고 결점 없이 둔 바둑도 기분은 좋겠지만 바둑은 혼자 두는 게 아니잖니? 묘수가 가득해지려면 상대의 바둑도 굉장히 좋아야 할 테고, 내가 묘수에 빠지지 않고 결점 없이 둔다는 건, 상대 역시 결점이 없거나 적었다는 반증이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대가 최선을 다해서, 상대도 나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내가 이겼는데, 나중에 복기했을 때 이보다 더 최선일 수는 없었던 바둑. 결국 최고의 바둑이란 나의 최선을 이끌어 낸 상대의 몫일지도라고 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고 어떤 일을 누군가와 함께하게 될 때, 나의 최선을 이끌어 준 상대방에게 감사하면서 이 세상을 좀 더 겸손하게 살면서 부단히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대목입니다. 우리가 교사가 됐을 때 최고의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최선을 이끌어 낸 학생들의 몫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학생들의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금 예비 교사로서 나 스스로가 최선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Q5. 이 책을 추천해 준다면 누구(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이 책은 자기 스스로 뭔가에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좌절감에 빠진 학생, 지금보다 좀 더 성장하기 위해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학생, 후배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선배로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인 학생, 뭔가에 새롭게 도전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학생, 사회의 부조리를 봤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학생 등 여러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온전한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버텨라. 그리고 꼭 이겨라”, “안 될 것 같아도 끝을 봐. 끝을 알지만 시작하는 것도 많아”, “끝까지 책임져 주지 못해 미안하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을 뜨겁게”, “더할 나위 없었다. YES!”, “판을 흔들어라, 각자의 처지나 상황에 맞게 조언을 해 주거나 교훈을 줄 만한 많은 표현 등이 곳곳에 있어서 앞날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의 윤태호 작가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시즌 2까지 완결하는 것을 통해 인내가 없이는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배웠으면 합니다. 장기간의 연재를 마무리해야 해서 젊은 장그래가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는 등 여러 현실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작품을 완성하고, 특정 법안을 일명 장그래법이라고 부를 만큼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에 많은 시사점을 얻었으면 합니다.

미생이란 작품을 다 읽으려면 웹툰을 읽고 나서 직장인들이 올린 여러 댓글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댓글을 통해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니, 댓글도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시즌 1의 끝인 9권에는 독자의 댓글 나에게 미생이란을 모은 것도 있으니 읽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아울러 드라마도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2023년에 미생 드라마 대본집3권으로 나왔습니다. 이 대본집을 보면 드라마의 감동과 함께 웹툰 원작과 어떤 부분이 다르게 처리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대본집에 드라마에 참여했던 배우들의 글도 첨부돼 있어서 드라마 이상의 감동도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시즌 1의 웹툰을 보면 영업 3팀의 팀장인 오상식의 눈이 충혈된 것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격무에 시달려서 충혈이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직접적인 충혈의 이유는 14권의 프리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 전체를 다 보면서 시즌 1에서는 몰랐던 내용 중 시즌 2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