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호/기자칼럼] 꺼지지 않는 불꽃, 인간다운 노동을 향하여

2024-04-08     김재하 기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수차례 노동청에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경찰들의 거센 제지에 시위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 책과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채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스물두 살, 그의 이름은 전태일(全泰壹)이었다.

내가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보수동책방골목에 있는 한 헌책방에서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에 우연히 손이 닿았던 것이 그 계기였다. 부끄러웠다. 전태일 열사의 고향인 대구에서 이십 년이나 살았던 내가 그의 이야기를 이제야 안 것이다. 

 

1969년 11월경, 그가 당시 대통령 박정희에게 썼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그의 유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일요일은 쉴 수 있고, 최저시급이 보장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이니 말이다.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인간답게 노동하는 세상. 그가 자신의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꿈은 바로 그것이었다. 노동자가 ‘인간’으로 대우받는, 즉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꿈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한국교원대신문 기자가 되었던 2022년에는 SPL 제빵공장에서 한 20대 여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기사로 실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도 군포에서 한 쿠팡 새벽 배송 택배 노동자가 쓰러져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도 거의 매일 같이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약자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둔 지금은 너도나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지난 선거철에도, 그 전의 선거철에도 똑같이 되풀이됐던 광경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더욱 진지하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싸워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부딪쳐야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태일, 그가 싸워서 얻어낸 것들, 몸으로 부딪쳐 무너뜨린 것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그가 꾸던 꿈을 이어서 꾸고,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가 근로기준법 책에 붙인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태일이의 참목숨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분들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태일이는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고난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무언의 발걸음 속에 태일의 뜨거운 절규는 기어이 살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전태일 열사와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