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호/사무사]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힘
지난달 23일,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병원을 대거 이탈한 가운데, 대전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80대 심정지 환자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심정지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병상 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의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환자를 살리는 일에 사명(使命)을 가지고 충실히 임하던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이탈하였다. 의료계 파업으로 시민들이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음에도 강경책을 고수하는 정부의 태도가 최선인지, 의사들의 파업 목적이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대한민국에서 견고하던 의사들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신뢰(信賴), ‘굳게 믿고 의지함.’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라는 말처럼, 신뢰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신뢰는 지속해서 꾸준한 믿음과 확신이 기반이 되었을 때 두텁게 형성된다. ‘소방관은 화재진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내 친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등과 같은 생각은 예로부터 꾸준히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며 충분한 믿음을 주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국교원대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나는 지금 우리 시대의 ‘언론’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고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에서 발표한 <2023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는 28%에 불과했다. 단순 조회수를 위하여 허위·조작된 뉴스를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가장 공정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정확한 정보만을 담아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신뢰를 쌓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99개의 진실이 있더라도 1개의 거짓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한국교원대신문 수습기자 면접에서 기자로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잠깐의 고민 뒤 ‘정직(正直)’을 꼽으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기자로서 추구해야 할 첫 번째”라고 덧붙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점철된 요즈음의 기성 언론과는 다르게 한국교원대신문은 공정한 시각에서 진실(眞實)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사 피드백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역시 해당 내용이 정확한 정보인지에 여부다. 거짓 없는 내용의 신문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교원대신문’에 대한 신뢰를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미덕은 역시 신뢰라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불신의 시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믿음보다 의심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는 요즘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신뢰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교원대신문이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편안함을 주는 언론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