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호/교육현장엿보기] 관계 중심 생활교육을 통해 함께하는 교실로
권승준 고운중학교 교사
교사로서 첫발을 뗐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곤 하는 과업 중 하나는 바로 학생들의 ‘생활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사들이 문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활지도를 교직 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꼽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더욱 공고히 뒷받침된다.
사범대학에서 수년 동안 교사로서 성장하여, 학교 현장에 나아갔던 나 또한 교사로서 마주하는 생활교육의 면면에서 당혹스러움을 많이 느끼곤 했다. 장차 교사로서 가르칠 교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데 중점을 둔 대학교의 교육과정, 교과목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고 그 탁월성을 점수로 환산해 서열로 매기는 임용시험 등 - 교사로서 자라나는 과정에서 갖추었던 나의 전문성은 대체로 교과교사로서 수행할 역할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학교로 발령받아 현장에서 마주한 교사의 역할은 예상과 무척 달랐다. 학생들 간의 사소한 장난부터 시작해서 때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학교폭력, 흡연과 음주 등 일탈 행동, 그 결과 이어지는 자해와 자살 시도까지. 교사로서의 삶은 학생들에게 교과를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 아이들이 다른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교에서의 생활교육이 어떠한 체계적인 교육과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 교사가 지닌 경험과 역량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전에 체계나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무형식 학습’과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것이 관계 중심 생활교육이었다. 관계 중심 생활교육은 이전까지 이루어지던 응보적 정의에 기반한 생활지도에서 벗어나 학생들 간의 관계 회복과 회복적 정의를 꾀하는 데 초점을 둔다. 즉 이전까지는 누가 가해자인지,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이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중점을 두어 생활지도가 이루어졌다면, 관계 중심 생활교육은 대화를 토대로 학생들 간의 라포르를 다시 형성하고 이를 통해 관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성장을 이룩하고자 노력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담임을 맡았던 우리 반도 ‘관계 중심 생활교육 실천 학급’으로서 회복적 정의에 함께 발을 디뎠다. 학교폭력 경험이 있는 학생, 선도위원회에 소환되었던 학생 등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부대꼈던 제자들과 한 해 동안의 학급 운영에 함께하면서,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변화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을 다룬 책을 읽고 그 해결 과정을 통해 자신이 했던 행동을 되돌아본다든지, 때로는 체육대회 과정에서 함께 응원하면서 경기 중 친구의 실수에도 응원을 보낼 수 있는 포용력이 길러지는 등 조금씩 그 변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생들 스스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또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교사들 또한 관계 중심 생활교육을 계기로 연수에 참여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학생들 간 관계 회복을 위한 방안과 방법을 논의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응보적 정의에 갇혀 잘못을 저지른 이의 처벌에만 열을 올리고 피해자의 아픔은 쉬이 잊곤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끔찍한 사건 직후에는 모두 분노하지만 처벌 후에는 그 일을 잊게 되는 우리의 세태는, 우리 사회에서의 정의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학교 현장은 관계 중심 생활교육을 통해 모두가 함께 어울려 공감할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다.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 우리 사회 또한 회복적 정의를 향해 한 발 더 내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