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호/사무사] 작별(作別) : 아름다운 끝맺음
“갑니데이, 잘 있으소.” 추석날 할머니가 할아버지 산소를 떠나며 할아버지에게 남기고 온 말이다. 할머니는 꼭 산소에 다녀올 때면, 할아버지에게 몇 가지 부탁들을 남겨두고 오곤 한다. 보통은 손자, 손녀 시험 잘 보게 해 달라, 대학 별 탈 없이 갈 수 있게 해 달라 같은 소소한 부탁들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얼굴을 뵌 적도,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늘 필요한 건 없나, 도와줄 건 없나 살피며 곁을 지켜주고 있을 사람이었구나 가늠해본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르길 바라던 사람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언젠가는 나의 곁을 떠나간다. 이것은 비단 사람과의 연(緣)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정이 든 공간을 떠나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신념과 애정을 갖고 해오던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때 내 몸을 가득 채우던 뜨거운 열정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무모함도 언젠가부터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이런 이별의 순간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갑작스레 찾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한동안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겉으로는 멀쩡한 듯 살아가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외면하고 있던 공허함이 가슴 깊이 사무치기도 한다. 내가 마음을 내어준 것일수록 그것이 떠난 빈자리는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게 되거나, 회의주의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이것을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신을 기투(Entwurf)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곧 현존재는 자신의 마지막인 죽음을 향해 미리 앞질러 달려감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 가장 본래적인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이데거는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에 대해 논한 것이지만, 우리 삶 곳곳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마지막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에서 말미암은 것이든 우리의 삶에는 피할 수 없는 마지막들이 있다. 그렇기에 이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만이 온전한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다. 끝이 있다는 것은 지금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의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별(作別).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말한다. 어떤 기억보다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는 법이다. 지나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시간이나 공간이든, 또는 놓아주지 못했던 어떤 시절의 나 자신이든 더 이상 내 곁에 없어도 그것이 나를 스치며 남긴 작은 생채기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나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 나를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 그리고 내 삶에 찾아올 새로운 무언가를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끝맺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