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 우리는 모두 노동자
“노동자가 될 사람에게 노동 교육은 당연”
▲한 청년이 쓰러진 이유
지난해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한특성화고 실습생이 일을 마치고 쉬고 있다가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가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기독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아직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다. 확인 결과, 그는 하루10시간 주58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하며 정규직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명백한 초과근로로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다.
무엇이 한 청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차적으로는 현장실습제를 악용하여 싼 값에 고등학교 실습생을 정규직의 빈자리에 투입해 생산라인을 쉼 없이 돌린 회사 측의 잘못이다. 하지만 실습생이 회사 측의 부당한 처사를 인식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을까. 9월부터 12월까지 석 달이 지나도록 실습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종강 한울노동연구소 소장은 문제의 원인을 노동교육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는 "실습생이 충분한 노동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교육에 대하여 "첫째로,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받는 게 어떤 의미인지 둘째로,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얻는데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는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애초에 실습생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 기아자동차 측의 부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항의할 여지를 가졌을 터였다.
다만 노동교육은 위의 실습생과 같은 육체 노동직에 한하여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 지방경찰청에서 꾀죄죄한 범죄자의 인상착의를 ‘노동자풍’이라고 표현했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으레‘노동’이라는 말에 몸을 쓰는 힘들고 천박한 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기실 노동이란 공장 노동자부터 변호사까지 그 직종을 막론하고 직업을 가진 모든 이가 행하는 일을 뜻하는 엄밀한 사회과학 용어다. 이에 대해 하종강 소장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대다수가 노동자가 된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블루칼라뿐만 아니라 정신노동을 하는 화이트칼라도 노동자다”라고 말했다.
▲왜 노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종강 소장은 현재의 교육제도를 '비정상적’이라고 표현했다. “노동자가 될 대다수의 학생에게 노동교육을 시키는 것은 당연”하나, 우리나라는 학생에게 이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서 2012년 1학기 시중에 출판된 사회교과목 교과서 62권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 1만7260쪽 분량 가운데 노동을 다룬 내용은 159쪽으로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설사 노동과 관련한 사항을 설명하더라도 기업과 시장을 설명하는 단원에 부분적으로 속해있는 형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청년실업, 최저임금 등에 관한 설명도 부족했다. 교과서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교육 현장을 살펴보더라도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찾기 어려움은 물론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노동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는 초중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시민교육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의 권리를 가르친다. 더불어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사회과목은 1/3 정도의 분량이 노동조합의 교섭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다.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모의단체교섭을 1년에 6차례 진행한다. 각자가 사용자와 노조간부를 번갈아 맡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곧 우리는 왜 이제껏 유럽과 같은 노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의구심을 가질 법하다. 이에 대하여 하종강 소장은 "근대에 걸쳐 자본주의와 노동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1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식민지로서의 경험과 전쟁, 분단을 겪어 노동교육이 시행될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그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친일부역자들이 최초의 기업가, 정치가가 되었다”라며 "부도덕한 집단이 그대로 사회지배집단이 되었으니 노동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노동교육을 통해 노동자가 자각하게 되면 그들의 기득권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가 겪은 특수한 경험은 노동에 대한“알레르기적 기피증”을 낳았다. 노동조합이 사회혼란을 조장하고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말이 사회의 공공연한 이야기가 돼버린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군인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으나 국가 안보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일축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종강 소장은 "유럽에는경찰노조, 판사노조, 심지어 군인노조도 있다. 군인노조의 경우 군인노조의 활동으로 병사들이 군사조직에 더 친밀해지고 도덕심, 충성심이 고양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으로 우리 사회가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교육에 앞서 교사가 노동자 의식 갖춰야 한다
이어 그는 우리학교 예비교사들을 위한 제언으로, "노동교육이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교사부터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춰야 한다. 교사의 노동자성을 불손하다 여기는 것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우수한 학생들이지만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의식수준이 최하위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피터 존슨의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2007년에 전교조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피터 존슨 핀란드 교장협의회 회장이 찾아왔다. 피터 잭슨 회장에게 던져진 첫 반응은“한국은 교원노조와 교장협의회가 앙숙이다. 전교조가 주최한 행사에 교장협의회 회장이 오시다니 뜻밖이다”이었다. 피터 잭슨 회장은“보통 교장들은 대부분 교원노조에 가입해있다. 나도 그렇다”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