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한국인의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과 예술
9월 2일 막을 내린‘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펼치는 별들의 잔치’라는 <라보엠> 공연은 50억대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50만 원대의 입장료가 제대로 팔리지 않아 4회 공연 계획이 2회로 줄었고 그것도 70% 이상 할인해 판 땡처리 중에서도 땡처리, 싸구려 중에서도 싸구려 잔치였다. 연봉으로 20억 원을 받는다는 별 중의 별 정명훈을 비롯한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위대한 예술을 외면한 한국 관객의 수준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 음향으로 하겠다는 아주 기본적인 약속부터 무참히 깨어진 그야말로 황당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펼쳐진 연세대 노천광장에서는 그런 음향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래서 부랴부랴 달리게 된 마이크가 만들어낸 기술 음향은 참으로 조잡했다. 그뿐인가? 지중해에서 열리는 꿈같은 한 여름 밤의 야외 공연을 한국에서 실현하다는 꿈은 태풍으로 공연 날짜부터 뒤흔들었다. 누구 탓인가? 태풍탓? 하늘 탓? 공기 탓? 별 탓? 며칠 뒤 9월 6일 나는 국립오페라단의 강좌에서 140년 전 이집트 총독이 경제개발의 상징인 수에즈 운하 개통을 축하하려고 작곡비만 30억 원을 들인 <아이다>공연 이후 이집트가 망했다고 했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아이다>는 유럽에서는 성공했지만 정작 이집트에서는 실패했다. 이집트에서는 총독을 비롯한 극소수 고객을 위한 제국주의적 사치품에 불과했으나 유럽인에게는 그 제국주의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스펙터클 대중오락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오페라하우스가 있던 카이로의 강남 에즈바키야는 지금 빈국 이집트의 가난을 상징하는 폐허일 뿐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끝없이 <아이다>를 비롯한 오페라가 열리는 곳은 그곳의 부를 상징하는 번화가 중에서도 번화가다. 물론 오페라 극장들이 즐비한 서양의 거리에서는 금융도 함께 깨춤을 추어 자본주의를 미치게 하지만 말이다.
나의 강좌는 ‘오페라와 오리엔탈리즘’ 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모든 서양 예술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18-19세기 오페라에서 두드러진다. 지금도 자주 공연되는 헨델 오페라 12점, 로시니 오페라 13점, 모차르트 오페라 5점, 베르디 오페라 5점, 푸치니 오페라 2점 등외에도 18-19세기에는 수백 점의 오리엔탈리즘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그 대부분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그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었다. 대부분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처럼 아름다운 백인 처녀가 동양 황제의 후궁에 납치되어 황제에게 사랑을 강요당하지만 정조를 지킨 뒤 조국의 애인에게 구출된다는 스토리다. 그것이 서부영화나 모험영화, 탐정영화나 스릴러영화로 20세기에 변모했음을 우리도 잘 안다.
그러나 그 원조는 오페라가 아니라 3, 4천 년 전 그리스 로마의 신화나 역사다. 가령 영화 <타이탄>의 원전인 그리스 신화 그리고 <트로이> 등의 원전인 호메로스의 <일리어스>와 <오디세이>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나 역사에 나오는 신과 영웅이 무찌르는 적은 모두 외국산 괴물들로 주로 동양에서 온 것들이다. 그런 원전이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식인종을 길들이고, 탐정 셜록 홈즈가 동양 식민지에서 온 사이코패스 범죄인을 죽이고, 타잔이 정글의 동물과 원시인을 지배하는 21세기까지 서양의 예술을 지배하는 오리엔탈리즘의 기본이다. 나는 크루소의 무인도가 독도라면, 홈즈의 범인이 우리라면, 타잔의 정글이 지리산이라면 어떨지를 상상해본다. <아이다> 같은 오페라가 일본 총독부를 위해 작곡되었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본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노래하는 오페라 <라보엠>은 물론 <아이다>와 달리 총독부가 작곡을 의뢰할 리 없지만 프랑스로 보헤미안을 뜻하는 <라보엠>은 본래 19세기 유럽 안의 식민지 같았던 동유럽 출신을 뜻했다. 그러나 그 오페라 공연은 지독하게도 사치스럽게 열려 지금도 가난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기를 죽인다. 수백억원 투기 대상인 그림보다는 그래도 낫다(낮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얼마 전 100만원까지 했던 오페라의 입장료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래서 나 같은 월급쟁이는 외국에서는 즐겨 보는 오페라를 국내에서는 보기 어렵고 억지로 보게 되어도 항상 별로다. 기술적으로야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페라 자체에도 문제가 없지 않는지, 특히 오리엔탈리즘적 요소가 문제는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푸치니 오페라 중에도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는 대표적인 오리엔탈리적 오페라다. 나비부인이 우리 기생이나 소위 양공주가 아니고 일본 게이샤여서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