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호/교육현장엿보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서울 신천중학교 김민선 교사

2023-11-13     한국교원대신문

2008년에 처음 교사가 되면서부터 꼭 해 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편지 모으기이다. 내가 편지에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는 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선생님께 문안 편지 쓰기(방학식 날 담임 선생님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방학식 안내문에 쓰게 되어 있었다!)가 있었는데,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건성건성 몇 마디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한껏 반항심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여름방학 편지에 선생님의 학급 운영에 대한 불만(왜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단체 기합을 받아야 하나요, 등의 그때 당시로 보자면 맹랑했던 편지)을 써서 보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솔직하고 다정한 마음을 담아 편지지 두 장을 가득 채워 답장을 주셨던 것이다. 그 편지를 지금까지 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나는 편지가 담고 있는 힘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병(?)을 얻게 되었다.

 이후 쿠키 케이스, 운동화 상자, 라면 상자를 거쳐 거대한 리빙 박스에 나의 추억이 담긴 편지들이 담기게 되었는데, 날카로운 말에 상처받고 의도치 않게 실수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면 여기 담긴 말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힘들 때도, 재수할 때도, 지금도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것들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힘을 주곤 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중에서 선생님과 함께 1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어요. 잘못된 부분은 꾸짖어 주시고 잘한 일은 칭찬해 주시며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좋은 관심을 주셔서 엇나가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가르침, 주신 사랑 지금까지 기억하고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항상 다른 친구들 보면서 열등감만 느끼면서 상처만 입고 있을 때, 쌓아가고만 있을 때 제 자신한테 나를 알려 주시고, 알게끔 도와주시고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샘의 자랑할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제자가 되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저는 선생님께 부족한 제자였을지 몰라도, 선생님은 제게 최고의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저에게 정말 감사한 존재입니다. 제가 2학년 때는 지금처럼 수업을 열심히 듣거나 과제물을 완벽히 수행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3학년이 돼서 저를 엄청나게 예뻐해 주시니까 제가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매일 힘드실 텐데 매일매일 활짝 웃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만약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제가 3학년이 될 때까지 이렇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각하며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머리 위에 링이(물론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천사 같은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제 중학교 선생님들 중 최고의 선생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다른 과목도 도전할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해 주셨던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상담할 때 해주셨던 다정한 이야기들도,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들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그 때의 저에게는 정말 너무너무 큰 힘이었습니다.  

 

한 장씩 다시 읽으며 돌이켜보면, 내가 뭘 했다고, 라는 생각이 들며 부끄러운 마음뿐이지만 넘칠 만큼 사랑을 준 존재가, 따뜻한 표현이 담긴 편지가 내 손에 남아 있어서 정말 좋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차곡차곡 모아서 그때의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그러면 이 마음들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되겠지.

교사 생활을 하며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목이 쉬도록 울분을 토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매년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서 금방 애정 어린 눈빛을 건네는, 손 내밀면 쑥스러워하다가도 금방 그 손을 잡을 줄 아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