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호/교수의 서재]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사색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란 무척이나 힘들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때로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사색’을 통해 차분히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고민해 보면 어떨까? 이번 교수의 서재에서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역사교육과 김우택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교수님께서 학부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몇 해 전 돌아가셨지요. 이 책은 그 분께서 20대 후반부터 약 20년 동안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시던 중에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서 출판한 것입니다. 당시는 군사 정권 시절이었고, 학생 운동을 하던 신영복 선생님은 ‘통혁당 사건’이라는 공안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셨지요. 그런데 이 책에 담긴 편지들은 그런 정치적인, 혹은 사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수감 생활 속에서 삶을 되돌아보며 정리한 여러 생각들이 담겨 있지요. 무척 따뜻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친한 학과 친구가 생일에 선물해 주어서 알게 된 책이었어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땐 선물로 책을 주고받는 경우가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기가 읽어봤는데 참 좋더라면서 건네주더군요. 그 뒤로 지하철로 학교에 오고 갈 때, 혹은 공강 시간에, 학교에서 틈틈이 읽곤 했지요.
Q3.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여름 징역살이’라는 표제로 실린 편지의 내용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중략)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좀 길게 인용했는데요, 사실 앞뒤 내용을 같이 봐야 더 문맥이 살아나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도서관에 책이 비치되어 있으니 직접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대학생 시절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옳은’ 존재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이성이 얼마나 쉽게 작동을 멈추고 우리를 ‘본능적인’ 존재로 돌아가게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경험담을 읽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깨닫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지요.
Q4. 그 책은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사춘기 시절, 또 대학 신입생 시절에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 ‘왜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할까?’ 싶을 때가 많았죠. ‘정상’의 기준은 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고, 그 틀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감정을 잘 모르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미국의 드라마인 스타트렉 시리즈의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에피소드를 보며 무척 공감하기도 했었죠.
그런 고민을 하던 시절에,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그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찬찬히 들여다보게 해주었어요.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겨나는 여러 감정과 경험들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되돌아보기, 무심히 지나치곤 하던 것에 주목하기, 새로운 방향에서 생각해 보기 등등…. 여전히 사람도 세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다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라고 한 뜸 들이고 좀 더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5.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사색’이라는 말 자체가 아마 요즘은 낯선 표현이 되었을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진다’는 뜻이죠. 가만히 머리를 비우고 무언가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는 일. 요즘처럼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 늘 노출된 시대에는 쉽지 않지요. 그런데 그런 자극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생각에 빠져보는 것이 우리의 정서와 활발한 두뇌 활동에 꼭 필요하다고 해요. 다만 10분씩이라도, 한가하게 머리를 비우고 주변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생각을 떠올려 보기를 권하고 싶어요. 쇼츠나 카톡, 인스타에서 밀려 들어오는 정보들을 잠시 차단해 두고 말이죠. 처음엔 지루할 수 있지만, 좀 지나면 그런 시간도 또 다른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기만의 삶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