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호/사회] 보건복지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 확대 추진
의협, “필수·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은 의사 인력 부족 때문이 아닌, 열악한 의료 환경에 기인”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 우려로 인해 정부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고정된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하여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는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필수·지역의료의 안정적인 환경 구축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관련한 논의 방식을 두고도 정부와 의협 간 시각차가 두드러진다.
◇ 尹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은 필요조건” … 구체적 확대 규모는 미정
정부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고정된 의대 입학정원을 현재 고2가 치르는 2025년도 대학입시부터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의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는 ▲응급실 ▲외과 ▲소아과 ▲지방의료 등 필수의료 인프라가 붕괴될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 수준으로 OECD 평균인 3.7명보다 모자라며,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등으로 2050년 기준 약 2만 2천 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9일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혁신전략’에서 국립대병원을 서울 빅(Big) 5급 병원으로 육성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을 내놨지만,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정확한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필수 진료 과목의 인력 수급이 어려워서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고 지역 간 의료격차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역 및 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고 얘기하며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리고 지난 26일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인력 확충의 시급성을 감안해 2025학년도 정원은 기존 대학을 중심으로 (증원을) 우선 검토하고, 지역의 의대 신설도 지속해서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6일에 있었던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에서 보건복지부의 발표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수요조사와 점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년도 상반기까지는 대학별 정원 배정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 의협, 대한민국의 필수·지역의료 현실은 ‘밑 빠진 독’ … 안정적인 환경 구축이 먼저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관련한 움직임을 보이자, 의협은 지난 17일 오후 '의대 입학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안을) 발표하면 의료계와의 신뢰는 깨진다. 그렇게 되면 2020년 파업 때보다 강력한 투쟁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며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에 반대를 표했다. 이날 회의 후 의협은 '의료계 대표자 결의문'을 통해 "필수·지역의료 붕괴의 근본적 원인은 의사 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의료 환경에 기인한다는 점을 정부는 직시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 25일 의협은 6월 개최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300명 선에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인터뷰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며 정부의 의사 인력 확충 주장에 대해 필수·지역의료의 안정적인 환경 구축이 전제되어야 함을 지속해서 강조했다.
의협은 정부가 26일 발표한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과 관련한 입장문을 밝혔다. 입장문에 따르면, 정부가 진행할 '의대 입학정원 수요조사'가 이해 상충에 따라 왜곡된 조사로 전락하게 될 점을 우려하였다. 의대 입학정원에 대한 수요조사는 타당성과 현장 수용성을 충분히 반영하여 객관적으로 협의가 이뤄질 것을 촉구했다. 또한 ▲소아 ▲분만 ▲중증·응급 등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필수·지역의료의 현실을 '밑 빠진 독'에 비유했다. "깨진 항아리에 아무리 많은 물을 붓더라도 결국에는 모두 항아리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완화와 헌신에 대한 합당한 대우는 필수의료라는 항아리의 깨진 빈틈을 메우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한다"라고 얘기하며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 의대 증원 논의 방식, 정부 “더 넓은 틀에서 진행” vs 의협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가 마땅”
의대 증원 논의 방식을 두고 정부와 의협 간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부는 의료계 의견 수렴을 중시하면서도 의대 증원 관련 논의를 더 넓은 틀에서 진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논의를 의사단체와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응하여 ▲의료계 ▲환자단체 등 수요자 대표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를 의대 증원 논의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의협에서는 "(의대 입학정원 문제를) 보정심에 가져가면 안 된다. 의료계와 협의한다고 했으니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하는 게 맞다"라고 얘기하며 정부와 의료계 간 논의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진행될 것을 주장했다. “보정심에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골라서 (위원으로) 넣은 것”이라며 의협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보정심에서 협의하는 것은 의료계와 협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령화에 따라, 우리나라 고령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수치만 보고 의대 입학 정원 확대와 관련한 사안을 논의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이란 지적을 받을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시각에서 나오는 입장 차이를 고려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