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호/사설] 2023년 10월의 교정, 그곳에서 만난 씁쓸한 세 장면.
10월이다. 유달리 기승을 부린 폭염과 무척이나 무서웠던 폭우의 기억마저 마치 오래전의 일처럼 가뭇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며 풍성함과 알 수 없는 처연함이 교차하는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하나둘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교정의 나무들과 발부리에 차이며 어지럽게 흩날리는 낙엽을 이 새로운 계절의 전령으로 맞이하며 시간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물론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낙엽을 태우며 진한 커피 향을 느낀다는 누군가의 노래가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미거한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계절의 변화를 미처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무언가에 쫓기는 탓일 테다. 그래서일까. 10월의 교정에서 불현듯 목격한 세 장면이 씁쓸하기만 하다.
첫째 장면. “관선 총장 절대 반대!” 청람대로의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들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 가운데 하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겨울 우리는 우리 대학을 이끌어갈 새로운 총장을 뽑게 될 선거를 치르게 된다. 벌써 구성원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우리 ‘교원대학호’의 조타수가 되려는 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우리의 일상이 된 지도 오래다. 그런 가운데 내걸린 그 현수막의 문구가 목에 걸린 가시마냥 생채기를 불러일으킨다. 우리 대학의 방향을 조정할 키를 우리 밖의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는 철부지의 위험천만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설화일까? 하지만 설화(屑話)는 설화(舌禍)를 낳고, 또 그 설화는 파국을 가져온다. 설령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학기말 교정을 떠들썩하게 만들 총장선거가 우리 대학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축제가 되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교원대학호’의 키를 잡으려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려는 우리 모두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둘째 장면. “교정을 울리는 ‘소란’의 노래와 ‘노회한’ 젊음의 향연.” 올해 10월의 첫 주는 연휴로 시작하고 연휴로 마감했다. 9월 말부터 시작된 추석 연휴가 개천절로 이어졌고, 또 연이은 한글날 연휴로 끝났던 탓이다. 물론 이 기간 누군가는 쉼 없이 달려오던 스스로를 위로하며 안식의 시간을 가졌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밀린 무언가를 마무리할 소중한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이의 짧은 학사 기간 동안 우리 대학은 동아리 주최의 대동제를 개최했다. 일상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모처럼 젊음을 만끽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주가 중간고사 권장 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도 남는다. 근 2주에 걸친 기간을 연휴와 축제 그리고 연휴로 보낸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교수와 학생은 시험이라는 시험 같지 않은 시간 속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밴드 ‘소란’의 노래가 소란스럽게 느껴진 것은 ‘소란’ 탓이라기보다 그들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우리 탓일 테다. 교정을 울리던 축제의 노래 속에서 노회해지고 형식화되는 젊음의 역설을 느끼게 되어 못내 아쉽다.
셋째 장면. “2024신규교원임용 티오 감소.” 개천절 연휴가 지나고 대동제에 접어드는 그 순간 교육부에서 2024 중등교사 신규 교원 임용과 관련된 시‧도교육청별 티오를 발표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교과나 지역별로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우려대로 전반적인 감소가 이루어졌다. 대동제를 준비하고 즐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며 발표 결과를 확인하던 졸업 예정 학생들의 근심 어린 시선을 지켜보면서, 청량함보다 스산함이 가득한 가을바람의 한기를 먼저 느끼게 된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젊음의 향연이 그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일이었을 것이라는 미안함 때문이다. 연휴, 축제, 선거와 무관하게 그들은 그저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며 도서관으로 향할 뿐이다. 우리 대학의 가을은 그렇게 ‘교원대학호’를 하선해 현장으로 나아가려는 학생들의 불안함과 함께 깊어져 간다. 잎이 떨어지고 그것을 밟으면서 무언가 찜찜함 기분을 느끼는 것은 분명 이 계절이 선사하는 뜻 모를 쓸쓸함 때문만은 아닐 테다.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10월의 교정에서 만난 세 장면은 한데 얽히고설켜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대학의 본령을 지키라는 하나의 정언명령을 던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의 총장은 결코 대학이라는 배의 선주가 아니다. 선원들의 중지를 모아 배를 운전하고 방향을 정하는 조타수이자 선장일 뿐이다. 우리 대학의 기본 방향이 공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면, 그 본령에 충실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가 우리 대학의 조타수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교정의 축제도 그런 대학의 본령을 지키면서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관선 총장’이라는 위협적인 말, 기계적인 편리함과 그에 편승한 행정편의주의 속에서 계획 없이 사라진 ‘학사 없는 학사력의 2주,’ 그리고 그 속에서 숨죽이며 책장을 넘겨야 하는 수험생들의 고단함이 교차하는 그로테스크한 교정. 이것이 10월의 두 주를 보낸 우리 대학 가을의 모습이다. 남은 10월의 후반부에는 쓸쓸함보다 넉넉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대학의 본령이 지켜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하는 장면들이 교정 곳곳을 물들이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진정한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