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호/교육] 교육부, 유아 사교육비 실태조사 계획 … 공교육 내실화될까
영어유치원, 교원자격증 없는 교사 비율 66.5%에 달해
교육부가 ‘사교육 카르텔’ 현상을 해소하고 공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하여 내년부터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 신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이는 현행 학원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 현상을 일부 반영한 것이다. 이에 관해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2019 개정 누리과정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정부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교육부는 현행 학원법 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 교육부, 내년부터 영어유치원 등 유아 사교육비 실태조사
지난 9월 24일 발표된 교육부의 2024 예산안에 따르면, 교육부는 내년에 5억 6,000만 원을 들여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 신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이는 현재 매년 사교육비를 조사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통계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만을 표본으로 삼아 집계된다는 점에서 사교육이 점차 저연령화되는 사회의 변화 추세를 적절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부의 2024 예산안에 따르면, 해당 정책은 지금껏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던 유아 사교육비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공교육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에 관하여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사교육 저연령화와 학부모 부담 증가에 따라 유아 사교육 실태 파악을 통해 체계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으로 유아 사교육비 조사를 신설해 공교육 내실화와 사교육비 경감 등 국가 교육정책 추진 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 불법 ‘영어유치원’ 301곳 적발 … 교원자격증 없는 교사 비율 66.5%에 달해
교육부가 유아 사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에 나서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6월이다. 교육부는 지난 6월 26일 '영어유치원'과 같은 잘못된 명칭을 사용하고 교습비를 과다 징수하는 등 불법적인 운영을 해 온 유아 영어학원 301곳을 적발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은 미취학 어린이의 교육과 보육을 담당하는 유치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행 교육법상 일반 학원으로 분류돼 있어 어학원과 같은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교원자격증이 필수인 유치원 교사와는 다르게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는 현행 학원법에 따라 전문학사 이상 학력만 보유하면 강사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교육부가 올해 3월 반일제 이상 영유아 영어학원 강사 2만여 명을 대상으로 관련 자격증 보유 여부를 조사해 보니,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가 6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지만,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말 그대로 학원법에 따르는 사설학원이라는 점에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난 10월 9일, 관련 인터뷰에서 “영유아 영어학원 강사의 자격 요건 강화에 대한 문제는 다른 일반 학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 대한청소년소아정신건강학회, “영어 사교육은 유아의 전인적 발달을 고려하지 않아”
현재 유아교육은 2019 개정 누리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유아의 전인적인 발달을 기본 교육 목표로 한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비공개 간담회에 따르면 해당 업계에서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교사 전문성 ▲시설의 안전도 ▲유아의 정서·행동 발달 지원 정도가 일반 유치원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다는 증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영어만 잘하면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와 관련 자격증이 없어도 사실상의 유치원 교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교사와의 상호작용이나 일상생활지도 및 행동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설명이다.
최근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교사의 전문성 논란 이외에도, 유아 자체의 언어발달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언어발달의 결정적인 시기인 만 3~5세 아동을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과도하게 노출하면 오히려 모국어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누리과정을 적용받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교재’를 사용한 자의적이고 분절적인 수업이 유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구본창 유아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유아 사교육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유아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교육부가 책임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아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하면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영유아에 대한 과잉교육을 방지하고 아이들이 발달 과정에 맞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의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