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호/사설] 지구계 순환과 인류

2023-09-25     한국교원대신문

지구과학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흔히 ‘지구계’ 혹은 ‘지구 시스템’이라 부른다. 지구계는 크게 암권, 수권, 기권, 생물권으로 나뉘며 각 권역은 지구계 안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교환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순환’이라 부르며, 지구계 내부의 순환은 다양한 길이의 시간 안에서 발생한다.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은 반나절이면 바뀌지만, 지구 내부로 들어간 암석들이 다시 나오기까지는 수억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들도 이런저런 순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우리가 지구계 순환의 한 요소라고 생각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래전 인류는 자연의 순환에 순응하고 그 순환에 맞춰 성장했다. 태양력과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었고, 태음력을 따라 어업을 일궈 나갔다. 가뭄이나 폭우, 지진, 화산 폭발 등과 같은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더라도 막연한 원망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다 17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류가 자연의 순환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지진이나 홍수가 신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순환을 이용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기에 이른다. 바람과 해류를 거슬러 더 멀리 이동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물을 막고 바람을 받아 동력을 만들던 수준에서 지하 깊은 곳의 열을 이용하거나, 원하는 물질을 뽑아 올려 활용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물질을 합성해 배출하면서 순환의 속도와 그 정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자연의 순환 혹은 자연을 지배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집중했지, 그 순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염화불화탄소(CFCs), 일명 ‘프레온 가스’라 불리는 비활성기체인데, 이것은 에어컨의 냉매나 불안정한 물질을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데 주로 사용했던 유용한 기체였으나 1974년 모리나와 로우랜드 박사에 의해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1985년 남극에서 오존층 파괴가 입증되기 전까지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이런 프레온 가스는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라 2010년이 되어서야 대부분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됐고, 10여 년 만에 오존층은 원래의 두께를 회복했다. 

프레온 가스와 오존층의 사례를 통해 인류가 자연의 순환에 부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 교훈은 생각보다 깊지 않은 것 같다. 1953년부터 하와이에서 관측된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는 지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시기의 변화보다 급격한 농도 증가를 보여 주지만, 몇 해 전까지도 가짜 뉴스로 치부하거나 인류가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고, 이를 되돌릴 수 없게 되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는 우리나라보다도 지진이 잘 발생하지 않던 지역이었지만, 2009년 이후로 2016년 경주 지진 수준의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석유산업 등에 의해 발생한 폐수를 무리하게 땅속에 주입한 결과임을 확인했지만, 비슷한 과정이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사례들과 같이 우리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지하게 물질과 에너지를 하늘과 바다와 땅으로 흘려 보내거나 뽑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고, 애써 부정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에게 온난화, 이상 기후, 지진, 자원 고갈, 식량 부족 등으로 돌아오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자원을 확보하고,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내 집에 불을 지르고 미지의 사막으로 걸어가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지구의 순환이 누구 때문에 깨지기 시작했고, 불이 나기 시작했는지 알고 있다. 불을 끌 의무도, 이후에 반복되지 않도록 멈추고 고민해야 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이런 과정 없이는 우주로 나가더라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또 도망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