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호/교육탑] 대안교육기관 ‘고양자유학교’ 존폐위기, 한국 대안교육의 미래는?
경기도 고양시의 대안교육기관 ‘고양자유학교’가 건축법 위반으로 존폐위기에 놓였다. 건축법상 ‘노유자 시설’로 지정된 고양자유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안교육기관이 고양자유학교처럼 교육부로부터 ‘교육연구시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용도로 지정된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고양자유학교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대안교육기관 200여 곳 모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건축법과 초•중등교육법 사이에 엇갈린 ‘학교’의 정의 … ‘대안교육기관’이란 무엇인가
2018년 일산동구로 이전한 고양자유학교가 건축법상 ‘교육연구시설’이 아닌 아동복지시설이나 노인복지시설을 의미하는 ‘노유자 시설’로 지정된 것은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나 시설 등의 측면에서 여러 대안교육기관이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라는 기준에 부합하기 어려웠다. 또한 고양자유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안교육기관은 교육과정의 자율성이나 다양한 경험과 같은 기존 공교육과는 다른 자유로움을 지향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인가 대안학교라는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2022년 1월 기존의 교육법 체계상으로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을 ‘학교’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감독에 어려움을 느껴 특별법인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하 대안교육기관법)’을 제정하여 ‘대안교육기관 등록제’를 시행하였다. 대안교육기관법에 따르면 기존 미인가 대안교육시설 중 일정 기준을 갖춘 시설들을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함으로써 해당 기관의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재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안학교는 특성화 중고교를 논외로 하면 ▲‘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 3(대안학교)에 따라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 ▲대안교육기관법에 따라 등록한 ‘대안교육기관’ ▲인가나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대안교육시설’로 나눌 수 있다.
◇ 고양자유학교 1심 행정소송 원고 패소 … 전국의 대안교육기관 비상
2022년 5월 ‘학교가 건축물 용도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민원을 접수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는 대안교육기관인 고양자유학교를 건축법상 ‘학교’로 인정하며 건축법 위반으로 시설물 원상복구 시정명령을 내렸다. 고양자유학교는 건축법상 건축물 용도가 ‘노유자 시설’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용도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1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는 고양자유학교를 사실상 폐업하라는 명령과 다르지 않다. 일산동구는 원상복구 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 부과 ▲고발 등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2022년 8월 고양자유학교는 ‘건축법상 건축물 용도에 대안교육기관이 들어갈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 입법 미비 상황’이라며 일산동구의 행정처분에 대해 부당함을 주장하고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9월 5일 의정부지방법원 제1행정부(이영환 부장판사)는 고양자유학교가 일산동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해 ‘학교는 일정한 목적•교과과정•설비•제도 및 법규에 의해 계속해서 학생에게 교육하는 기관’이라며 대안교육기관인 고양자유학교를 ‘학교’로 판단하고 일산동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고양자유학교 측은 이에 불복하며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대안교육기관 관계자와 학부모 및 교육 당국 모두가 당혹해하고 있다. 교육부에 등록한 200여 개 대안교육기관들 중 건축법상 ‘학교’로 등록한 곳은 극소수이며 54.6%가 ‘근린 상업시설’에서 운영 중이고 ‘노유자 시설’이나 ‘동물 및 식물 관련 시설’에서도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패소 판결이 확정될 경우 고양자유학교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건축법상 ‘교육연구시설’이 아닌 다른 용도의 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국의 모든 대안교육기관들이 해당 지자체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 판결에 반대하는 목소리들 … 대안교육연대, ‘고양자유학교에 대한 행정명령을 취소하라!’
이에 맞서는 움직임 또한 나타났다. 지난 8월 25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대안교육연대와 한국대안교육기관연합회 소속 대안교육기관 구성원을 대상으로 ‘고양자유학교 행정명령 취소 지지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으며 1,800명이 동참했다. 취합된 서명은 31일 재판부(의정부지방법원 제1행정부)에 전달되었다.
대안교육연대 이홍우 사무국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 30여 년간 미인가 대안학교들도 학교로 인정해 달라고 할 때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이제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하니 법원이 학교로 인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특별법으로 대안교육기관법은 제정되었지만 건축법상 대안교육기관을 포함하는 관련법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홍우 사무국장은 “교육 당국은 국토부와 공조해서 대안교육기관들의 실상에 맞게 관련 법령들을 개정하는 것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은 관련법 제정과 충분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