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 가르치려면 배워야 한다
‘백성들이 나랏님 이름조차 모를 때, 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이다’라고. 진정한 태평성대라는 것은 백성들이 나랏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 정도로 그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가 도야한 듯하다. 이 태평성대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것인데, 특히 우리학교에서는 이번 학생총회를 거치며 그 존재가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하반기 학생총회 서기록에는 이번 총회에 참여한 재적인원이 255명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255명이라는 수는 당시 재적했던 인원의 최대치일 뿐, 간담회를 진행할 때만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4회 동안 무산된 하반기 학생총회의 재적인원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학생총회에서 얻어가는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리를 잃는 경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생총회에서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업에 대한 통보만이 있다고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업에 대해서는 학생총회에서 합리적으로 발언을 하면 된다.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사람들이 그에 호응해 줄 것이다. 학생총회는 학생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최대한 많이 반영될 수 있는 곳이고, 모두가 총학생회의 운영을 직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글로 배운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는 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라며 함부로 냉소를 짓지 말자. 비록 그 규모가 작고 실제로 별 것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여에 대한 냉소는 결국 자신에게 더욱 큰 비수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정치에 대한 냉소로 우리가 돌려받은 결과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상반기 학생총회가 꾸준히 열린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그마저도 정족수를 채우기가 굉장히 버겁다는 사실이 걸린다. 상반기 학생총회 역시 언제 무산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학생총회가 연거푸 무산될수록 학생자치에 실리는 공신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총회의 모습은 학생자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고, 학생자치는 학생총회를 제일의 근간으로 하여 실현되기 때문이다. 여타 종합대학교의 학생총회는 이미 여러 해 동안 무산되어 사실상 사라진 상태인 와중에, 우리학교의 학생자치는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