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호/교육현장엿보기] 교사로 살아남기

2023-09-11     한국교원대신문

2023년의 여름은 참으로 지독하고 혹독하고 힘든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교사라면 올해의 7월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구분될 것이며 지금도 초등 교사들은 교사로 아파하면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서이초 사건이 있기 전에도 교사들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내가 운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제도의 모순들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못했다. 올 초에 언론에 보도된 학부모의 민원으로 세상을 등진 후배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 속상해할 뿐 이러한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고 또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그저 아주 순진하고 모범적이며 착실한 교사 DNA를 가진 사람들이 집단으로 살아가는 학교는 돈벌이하기에 아주 좋은, 법조계의 블루 오션이라는 말은 우리의 현실을 잘 말해 준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사 집단이 갖는 우울감과 분노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진행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교사와 교육, 학생, 학부모는 현재 큰 갈림길에 서 있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 현실은 교사에게 교육은 덤이고 보육과 치료와 상담과 보호 등의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지기를 강요한다.

나는 교사로서의 정체감이 흔들릴 때가 있다. 학교에 제기되는 다양한 민원과 학부모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낳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대부분의 민원은 교육에 관한 것들이 아니다. 교사들은 학교에 이제 기숙사를 지어서 아이들을 재워 주고 먹여 주는 일만 남아 있다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교사이기를 포기하면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과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 사회가 가스라이팅을 한 것인지, 교사가 되기 위해 4년간 공부하면서 길러진 것인지, 교사 개인의 신념에 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사들이 갖고 있는 사명감과 도덕성, 성실성, 인내심은 놀라울 정도로 높고 강하다.

이렇게 아프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버티고 있다. 학교에서 바쁘게 지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이들이 집에 가 버리고 없을 때가 있으므로 수업 활동과 하루의 일과를 잘 조직해 놔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반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아이들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20년 전에는 학급당 학생이 56명이었는데 지금은 학급에 26명의 학생이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더 다가가고 학생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모기 있어요.”

“선생님! 저기 있던 선인장 어디 갔어요?”

“선생님! 오늘 수학 대신 과학 하면 안 돼요?”

“선생님! 가위를 안 가져왔어요.”

“선생님! 글쓰기 공책이 안 보여요.”

“선생님! 오다가 범진이 봤어요.”

“선생님! 우리 오빠 태권도 품띠 땄대요.”

“선생님! 도서관 갔다 올게요.”

“선생님! 리코더가 없어요. 가져왔는데 안 보여요.”

“선생님! 저 오늘 준비물 다 챙겨 왔어요. 그래서 가방이 빵빵해요.”

“선생님! 준호 울어요. 준호 스티커를 라임이가 말도 안 하고 가져갔대요.”

“선생님! 그림을 어제 다 못 그렸는데 안경을 안 그려도 돼요? 안경 그리면 제 얼굴이 못생겨 보여요.”

오늘 아침 4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이 쏟아 내는 말들이다.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면서 반응한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사들이 교육 본질에 더 전념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학교 현장이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교사들 개개인의 헌신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