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호/교수의 서재] 인간과 권력에 대한 영원한 고전을 바라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삶을 영위하며 수도 없이 떠올리는 물음이고, 우리는 그 대답을 얻는 과정을 끝내 멈추지 못한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는 각양 각층의 인물들이 성공과 좌절, 우정과 배반, 지혜와 탐욕 속에서 갈등하는 것조차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시대정신과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지구과학교육과 최태진 교수의 서재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용기와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자.
Q1. 교수님께서 학부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사기 열전」입니다. 사기는 잘 아시다시피 사마천이 쓴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역사책이며, 그중 열전은 여러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대기를 다룬 부분에 해당합니다. 구글에 「사기 열전」을 검색해 보니 두꺼운 책들이 주로 보이는데, 제가 읽은 버전은 서해문집에서 1993년도에 나온 것을 세 권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두껍지는 않습니다. 「사기 열전」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다 보니 구성도 다른 것 같던데, 최근에 나온 「사기 열전」을 보니 직역되어 있어서 읽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읽은 서해문집의 「사기 열전」은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석되어 있고 배경 설명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아마 내용을 많이 축약해서 중요한 행적들 위주로 싣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각 권 제목도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 ‘진실로 용기 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라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데, 제 기억에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사서 읽었던 것 같네요. 당시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서점에 가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사곤 했는데 그때 이 책을 우연히 사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책이나 영화를 반복해서 보지 않는데, 왠지 「사기 열전」은 다시 읽어도 재미있어서 학부 마칠 때까지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연히 산 것치고 제가 책 끝이 해질 정도로 읽은 책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Q3.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지금까지 재미있게 읽기만 했지 이 책이 제게 준 영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들의 주요 행적을 모아 놓은 책이다 보니 제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의 심리, 생각, 행동과 그 결과 등등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제게 실제로는 도움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Q4.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다양한 주인공이 있다 보니 인상 깊었던 부분도 많지만, 두 가지를 꼽겠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인데, 전국시대 사군자 중 하나인 맹상군과 그의 식객이었던 풍환의 일화입니다. 이 당시에는 왕족 같은 사람들이 인재 등용을 위해서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데리고 있었는데 이를 식객이라고 합니다. 식객이 많기로 가장 유명했던 네 명이 사군자로 불렸고 맹상군은 그중 한 명인 거죠. 재상으로 있던 맹상군이 적국의 계략으로 파면되었을 때 모든 식객이 떠나가고 풍환이라는 식객 한 명만 남았는데, 이 식객의 기지로 맹상군이 복직됩니다. 그러자 떠나갔던 식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맹상군은 화가 나서 이들을 쫓아내려고 하는데, 풍환이 절을 하며 “돈이 많고 지위가 높으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니 예전처럼 식객들을 대우하라”라고 조언합니다. 읽을 당시에 저는 이 조언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 같네요.
두 번째는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당시의 명장이었던 왕전의 일화입니다. 왕의 입장에서 명장은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면서도 본인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전쟁할 일이 없어지면 숙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전은 이를 피하고자 통일 전 남아 있던 마지막 나라인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섣불리 쳐들어가지 않고 계속 왕에게 전령을 보내서 초나라를 무너뜨리면 큰 재산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당연히 주위에서 비난이 있었지만, 이 덕분에 왕전은 왕에게 정치적인 야망이 큰 사람이 아닌 물욕이 많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고, 통일 이후 황제에게 숙청당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열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목숨을 버려서 명예를 지켰다면 이 사람은 그 반대로 한 셈인데, 사마천은 이러한 점을 비판했지만 저는 매우 기발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Q5. 이 책은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난세를 살았던 다양한 위인들의 삶에서 하이라이트만 추려 놓은 책이라서,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네요. 또는 책략, 음모, 권모술수, 심리전 같은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고, 「사기 열전」을 실화 기반 처세술 사례 모음집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20대를 살아가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책을 읽어 보면 재미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된 지 오래라서, 책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언젠가부터 전공 서적 이외의 책을 읽지 않고 있네요. 우리에게는 책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있고, 그 매체들이 책보다 더 생동감 있고 다양한 자극을 주지요. 하지만 가끔은 덜 자극적인 것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제게 책은 실존 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다른 사람이 사는 삶과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수단인 것 같아요. 책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지요.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하나 골라 천천히 읽어 보시면서 책 읽는 재미를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