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호/사무사] 대의는 양심을 빼앗을 수 있는가
「대한민국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우리 헌법은 개인이 양심을 형성하고 그것을 실현할 자유를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왜 인간 내심의 영역인 ‘양심’을 법익으로 보고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양심의 자유가 법으로써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헌재 1997. 3. 27. 96헌가11)” 헌법은 그 이유를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권에서 찾고 있다. 즉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 그리고 그 인격의 정체성 및 동질성 유지의 기본적 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 양심은 한 인간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룬다. 하지만 이러한 양심의 자유 역시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바로 대의(大意), ‘다수’라는 이름이다.
2004년 8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실현의 자유의 보장 문제는 ‘국가가 민주적 공동체의 다수결정과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수의 국민을 어떻게 배려하는가.’의 문제”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입법자의 결정은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중대함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소수에 해당하는 국민의 양심은 다수의 안전을 지킨다는 대의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었고, 2018년까지 1만여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종류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4년 헌재는 입법자에게 공익 실현을 확보하며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그로부터 14년이 경과하도록 이에 관한 입법적 진전이 없었던 점을 꼬집으며 “국가는 이 문제의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함으로써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헌재는 해당 결정을 내리며 양심의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는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 이처럼 개인의 양심은 사회 다수의 정의관·도덕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문제되는 상황은 개임의 양심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법질서와 도덕에 부합하는 사고를 가진 다수가 아니라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양심은 그것을 지닌 자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릇되고 편협한 사고라는 낙인을 찍어 왔을지도 모른다. 이는 지금 다수인 사람들이 가진 시각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특히 구조적으로 다수에게 결정권이 주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쉽게 당연시되곤 한다.
영원한 다수도, 영원한 소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양심이 명령하는 것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다수의 양심이 소수의 양심보다 타당한 것이 아니며, 다수와 다른 양심을 지닌 자에게 그것을 포기하라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양심은 곧 인격이다. 그것을 놓아 버리는 것은 자신이 온전히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가 사회의 다수에 속하든, 사회가 외면하는 소수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