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호/교육현장엿보기] 시작(詩作)의 추억

정한섭 회화중학교 교사

2023-05-30     한국교원대신문

나는 조금 따뜻한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교육 현장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누군가는 여전히 교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나 자신과 그런 분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는 글을 쓰려 한다. 그동안 시 쓰기 교육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1996년 9월에 경남 의령군 궁유면에 있는 의동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마산에 살던 내가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벽지였다.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사태가 발생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대도시에 살던 아이들이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전학을 오는 경우가 있었다. K도 그렇게 전학을 온 2학년 여학생이었다.

당시에 나는 교원대 다닐 때, 시창작 동아리인 ‘다래실’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시 쓰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들의 시로 직접 시화를 제작하여 축제 때 시화전을 했다. 시화전에 K는 ‘어부가 된 아버지’라는 시를 제출했다. 시의 내용은 이랬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도배하는 일을 했는데, IMF로 일거리가 없어져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그로 말미암아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먹고  사는 일에 어려움을 겪은 K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K를 자신의 고향인 의령의 어머니께 맡기고 자신은 원양어선을 타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그런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 자신과 함께 사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시화전 때 많은 학부모들이 이 시를 보고 감동했고, 당시의 교장 선생님은 내게 K의 시를 읽고 눈물이 났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했었다. K의 시는 그런 나의 가르침이 잘 드러난 시여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 학생들에게 K의 얘기를 했었다. K의 시를 보관하지 않아 보여 줄 수 없어 정말 아쉽다.

다른 이야기는 2016학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그해 3학년 학생들은 유난히 문제가 많고, 수업을 하기 싫어했다. 3월 어느 날, 수업을 하러 교실로 가는데, 복도에 나와 있던 아이 몇이 오늘은 수업을 정말 하기 싫다면서 나가서 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난감했다. 아이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학교의 본관과 후관 사이에는 오래된 아름다운 벚나무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서 벚나무를 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한 편 쓰고, 그 다음에는 마음껏 쉬라고 했다. 단, 장난스럽게 쓴 사람은 남겨서 다시 쓰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3월, 학교의 벚나무는 마치 벚꽃으로 형광등을 켠 듯 환했다. 바람에 벚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슬픈 듯 아름다워 수업을 오갈 때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발로 나무를 한번 차면 꽃잎이 비 오듯 떨어지는데 그 모습도 장관이었다. 아름다운 벚나무 아래서 벚꽃을 보면서 쉬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듯해서 허락한 것이었다.

수업이 마침 4교시여서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4교시 수업이 없어 조금 일찍 식사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후관에 있는 식당으로 가려면 이 장소를 반드시 거쳐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아이들이 활동하는(노는) 모습을 보았다. 자격지심에 단순히 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아이들에게서 받은 시 중에서, 두 편을 뽑아 전체 선생님들께 한번 읽어 보시라고 업무 메신저로 보냈다. 아래 시는 그 두 편 중의 하나다.

 

원구 벚꽃

 

벚꽃잎이 떨어져서

원구 배 위에 떨어졌다

하나 둘 쌓여간다

숨을 쉴 때마다

꽃잎도 숨을 쉰다

벚꽃잎이 잘도 잔다

원구가 일어난 것을 보니

벚꽃잎이 만개했나보다.

 

벚꽃처럼

 

이 시는 원구라는 아이를 알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원구는 덩치가 크고 살집이 많은 학생이었다. 벤치에 누워있는 원구(순식간에 시는 대충 써놓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의 배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 배 같은 모습이었다. 그 푹신하고 넓은 배 위에서 벚꽃잎은 참 편안히 쉬었을 것이다. 원구의 배 위에서 잠든 원구의 숨소리와 함께 가볍게 오르내리는 벚꽃잎의 모습은 아름답고 나른한 봄날의 모습을 더없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구의 모습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잘 썼다고, 너무 재밌다고 칭찬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교감 선생님은 나에게 정 선생님과 수업하는 아이들은 행복하겠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요즘도 벚꽃이 필 때면 우연하게 이루어진 그 때의 수업을 웃음으로 추억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불행한 일도 겪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의 주인공인 죄르지는 강제 노동 수용소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직생활이 힘들겠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운 추억은 만들어진다.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답답한 교육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교직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이 글을 읽고 약간의 미소를 짓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그 미소의 힘으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