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호/사회] 자살 불러온 ‘우울증 갤러리’ … 비극 막으려면?

방송통신심위원회, 우울증 갤러리 ‘차단’ 대신 ‘자율규제 강화’ 요구

2023-05-30     김경훈 기자

416, 10대 소녀 A양이 SNS 생중계를 켜 놓고 고층건물에서 투신했는데, 이를 20대 남성 B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 지난 5일에는 서울 한남대교 북단에서 10대 여학생 두 명이 SNS로 자살을 생중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A양과 B, 10대 여학생 두 명 모두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였다.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는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글과 함께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문제는 익명성에 숨어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에 자살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와 디시인사이드에 우울증 갤러리의 폐쇄를 요구했으나 현실적으로 폐쇄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0대 소녀 SNS 생중계로 자살 경찰, 우울증 갤러리 폐쇄 요구

416, 10대 소녀 A양은 SNS 생중계를 켜놓고 고층건물에서 투신했다. 이를 한 20대 남성 B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자살방조죄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를 받는 B씨를 지난달 28일 입건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숨진 10A양와 20대 남성 B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알게 된 사이로 함께 자살을 하기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먼저 동반 투신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고 A씨와 접촉해 A양이 투신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같은 행위가 구체적인 자살 계획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던 B씨를 공식 입건했다. 이에 경찰은 A양에 대한 2차 가해와 모방범죄를 우려해 방통위와 디시인사이드에 우울증 갤러리폐쇄를 요청했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는 이용자들의 저작권을 이유로 폐쇄를 거부했다. 방통위는 결정을 미루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기로 했는데, 심의가 늦어지는 사이 비극은 또 발생했다.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알게 된 10대 소녀 2명이 어린이날에 자살을 시도하다 긴급 구조되었다.

 

방통위, 우울증 갤러리 차단대신 자율규제 강화요구

경찰의 요청에 방통위는 최근 10대들이 극단적 선택을 생중계한 배경으로 지목된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 대해 접속 차단은 하지 않고 사업자에 자율규제 강화를 요청했다. 방통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22일 회의를 열고 자살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고 해당 행위를 유도한 우울증 갤러리 게시글에 대해 위와 같이 의결했다.

회의에서 정민영 위원은 "게시판 자체가 범죄 목적으로 개설됐다고 보긴 어렵고 지금 문제 된 게시물이 전체 게시물에 비춰 보면 양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아서 게시판 자체를 폐쇄하는 방식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심각한 사건이 있었고 논란이 있었던 만큼 디시인사이드 쪽 사업자에 대해 사후 규제를 강화할 것을 권고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냈다. 이광복 부위원장은 "디시인사이드에 여러 갤러리가 있는데 극단적 선택을 유도한 글 91건 중 우울증 갤러리에는 5건만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이 거기서 활동했다는 것만으로 우울증 갤러리만 차단하는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며 "사업자가 자율규제 차원에서 미리 관련 글을 삭제하고 차단하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윤성옥 위원은 "불법 정보의 양적·질적 부분과 비중, 정보의 목적과 유형, 윤리·법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위해 여부, 글의 정보와 특성·맥락 등에 비춰봤을 때 해당 게시판은 극단적 선택을 유도하기보다는 우울증에 공감하고 위안을 주는 게 주요 목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정 카페에서 모여서 범죄를 공모한다고 카페를 폐쇄하면 범죄를 예방하는 게 아니다. 또 접속 차단을 하지 않는 게 불법 정보를 방치하는 게 아니다. 불법 정보는 개별적으로 삭제한다"고 강조했다.

 

우울증 갤러리 중독성 문제 심각해 상담 전문가 확충 및 바우처 신설 등 필요해

여기서 나가려면 죽거나 폐쇄병동에 입원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있죠.”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5년 차 유저(회원) 김민수(25ㆍ가명)씨는 22일 갤러리의 중독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번 빠지면 자의로 활동을 중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청소년들이 우울감을 극복하려 온라인 공간을 찾아 헤매고 의존하는 것은 그만큼 기존 정책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청소년시설 심리상담 전문가 확충과 청소년 전용 상담 바우처 신설 등의 대책 수립이 필요해 보인다. 박현숙 아이심리상담센터장은 청소년이 쉼터 입소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신적 문제로 단체생활이 어렵다는 답변이 꼽힌 적이 있다아이들이 우울증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설과 높은 접근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수년째 자살이고, 많은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위험하고, 불안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 위안을 얻고자 한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면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 추가적인 입법, 제도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