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호/사설] AI 시대의 글쓰기
최근 챗지피티(ChatGPT) 열풍 속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글쓰기라는 골치 아픈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엄청난 도구의 탄생에 놀라워하면서도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창의적 사고 능력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점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고 그로 인해 절약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투입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챗봇의 현재 버전은 한정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으며, 아직 한국어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 내에 인간이 쓴 글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방식의, 인간이 쓴 글보다 훨씬 방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쓴 AI의 글이 무수히 쏟아질 것이 자명하다. 단 몇 초 만에 서너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있는데 힘들게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쓰기 능력의 개념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성을 야기한다. 일반적으로 필자가 글을 쓸 때에는 쓰기 전 과정, 즉 내용 생성하기와 조직하기에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쓸 내용이 마련되고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막막해하거나, 쓸 내용이 없음을 호소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곤란에 대처하는 전략으로 글에 쓸 만한 자료를 찾아보거나,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 보거나 개요를 짜는 등의 방법들이 사용된다.
그런데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챗봇의 등장으로 인해 쓰기 전 과정이 이전만큼의 중요성을 갖지 않게 되었다. 사실 쓸 내용을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의 원천에서 가져오기에 용이한 환경이 구축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보화 기술의 발달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언제든 웹에 접속하여 찾고 싶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보다 필요한 지식을 탐색하는 능력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인공지능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찾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게 글을 대신 쓰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글쓰기에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 필자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AI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AI에게 쓰려고 하는 글을 명확하게 요구하는 한편, AI와의 대화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요구된다. 다른 하나는 AI가 쓴 글을 자신이 쓰려고 한 글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오류를 고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쓴 글의 오류를 고치는 정도를 쓰기라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AI가 쓴 글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는 AI를 도구로 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AI가 쓴 글에 자신의 목소리를 불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AI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로부터 나온 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당장에는 글쓰기의 수고를 덜어 좋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러한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언뜻 생각하는 만큼의 가치를 지니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개인의 사고를 발전시키는 도구이자 사회적 실천의 도구이다.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그러한 도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니 이를 활용하는 스마트한 필자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