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호/교육현장엿보기] 가라앉고 있는 세상에서
노일중학교 김동일 교사
4.16.
참사 이후 아홉 번째 맞이하는 그날이다.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
그날 이후, 교실에서 종종 학생들과 내가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느껴진다.
그날,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을 구하지 않은 어른들의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기록적인 출산율 하락이 증명하는 이 사회의 침몰. 가라앉고 있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어른으로서 내가 할 일은 뭘까.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이 '가만히 있으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적어도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는 말아야겠다 날마다 되뇐다. 그날 이후 나에게 학교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는 곳이 되었다.
이 마음으로 지난 한 달 남짓 동안 했던 수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책상과 의자가 없는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둥글게 마주보고 서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눈인사로 출석을 확인한다.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주제로 놀이를 도구로 수업을 진행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온다. 한 번도 말을 건네 보지 않았던 친구와 어느덧 가까워지고 그렇게 열린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뜨린다. 승패를 가르지 않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경쟁이 없으니 이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주 웃고 힘을 모아 문제 해결에 도전한다. 성공하면 기쁘지만 상벌이 없으니 실패해도 괜찮다.
"오늘도 놀아요?"
"우리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사소통,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연습하고 있어요. "
3월 한 달을 이렇게 지내며 학생들과 주고받는 문답.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연습한다는 건 나랑 가깝지 않은 친구에게도 말 걸어 보고 내가 싫어하는 친구의 말도 들어 주는 겁니다. 평화로운 의사소통은 나와 친구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듣는 거예요.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남 탓하는 대신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겁니다."
학부모총회가 있던 날 수업공개 시간에 오셨던 다섯 분의 학부모님은 이런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가 국어 시간에 왜 그런 걸 하녜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교과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랑 노는 선생님이 따로 있다고요."
"응? 우린 매시간 의사소통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우린 아주 중요한 걸 배우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학생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교과서를 펴지 않고 다같이 마주 보며 소통을 배우는 사이 봄이 무르익으며 꽃들이 활짝 피었다. 생태체험교육 운영 계획서를 만들어 학교장 결재를 받고 학급마다 한 번씩 45분 동안 학교 밖을 걸으며 벚꽃 나들이를 했다.
학교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겨우 에어포켓 정도일 테지만, 함께 웃으며 숨쉴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 놓은 데 대한 용서를 이렇게라도 구하려고 한다.
"새학기에는 정말 어색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었는데 국어 시간에 활동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재미있고 쉽고 편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또 남을 이해하고 다시 생각하고 말하는 힘도 기를 수 있었다."
한 학생이 수업 후기에 남긴 말이다. 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 손잡아 줄 준비가 됐다.
아무리 외치고 몸부림쳐도 결국은 가라앉고 말지라도, 외치고 몸부림치기를 멈추지 않기를. 가만히 있지 않기를. 서로 손잡아 주기를. 스스로에게, 내가 만났던, 만나고 있는, 만날 학생들에게,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