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호/교육현장엿보기] 가라앉고 있는 세상에서

노일중학교 김동일 교사

2023-04-17     한국교원대신문

4.16.

참사 이후 아홉 번째 맞이하는 그날이다.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

그날 이후, 교실에서 종종 학생들과 내가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느껴진다.

그날,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을 구하지 않은 어른들의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기록적인 출산율 하락이 증명하는 이 사회의 침몰. 가라앉고 있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어른으로서 내가 할 일은 뭘까.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이 '가만히 있으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적어도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는 말아야겠다 날마다 되뇐다. 그날 이후 나에게 학교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는 곳이 되었다.

이 마음으로 지난 한 달 남짓 동안 했던 수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책상과 의자가 없는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둥글게 마주보고 서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눈인사로 출석을 확인한다.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주제로 놀이를 도구로 수업을 진행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온다. 한 번도 말을 건네 보지 않았던 친구와 어느덧 가까워지고 그렇게 열린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뜨린다. 승패를 가르지 않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경쟁이 없으니 이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주 웃고 힘을 모아 문제 해결에 도전한다. 성공하면 기쁘지만 상벌이 없으니 실패해도 괜찮다.

 

"오늘도 놀아요?"

"우리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사소통,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연습하고 있어요. "

3월 한 달을 이렇게 지내며 학생들과 주고받는 문답.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연습한다는 건 나랑 가깝지 않은 친구에게도 말 걸어 보고 내가 싫어하는 친구의 말도 들어 주는 겁니다. 평화로운 의사소통은 나와 친구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듣는 거예요.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남 탓하는 대신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겁니다."

 

학부모총회가 있던 날 수업공개 시간에 오셨던 다섯 분의 학부모님은 이런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가 국어 시간에 왜 그런 걸 하녜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교과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랑 노는 선생님이 따로 있다고요."

"응? 우린 매시간 의사소통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우린 아주 중요한 걸 배우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학생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교과서를 펴지 않고 다같이 마주 보며 소통을 배우는 사이 봄이 무르익으며 꽃들이 활짝 피었다. 생태체험교육 운영 계획서를 만들어 학교장 결재를 받고 학급마다 한 번씩 45분 동안 학교 밖을 걸으며 벚꽃 나들이를 했다.

학교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겨우 에어포켓 정도일 테지만, 함께 웃으며 숨쉴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 놓은 데 대한 용서를 이렇게라도 구하려고 한다.

 

"새학기에는 정말 어색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었는데 국어 시간에 활동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재미있고 쉽고 편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또 남을 이해하고 다시 생각하고 말하는 힘도 기를 수 있었다."

한 학생이 수업 후기에 남긴 말이다. 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 손잡아 줄 준비가 됐다.

 

아무리 외치고 몸부림쳐도 결국은 가라앉고 말지라도, 외치고 몸부림치기를 멈추지 않기를. 가만히 있지 않기를. 서로 손잡아 주기를. 스스로에게, 내가 만났던, 만나고 있는, 만날 학생들에게,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