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호/세상의창] 앞으로 재앙을 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자연

2015-02-03     최수아 기자

발행 : 2014. 3. 31.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저)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1953년의 여름과 가을, 캐나다의 미라미치 강에서 출생한 연어들은 대서양에서 자신이 태어난 강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고 고향을 찾아 여기저기에 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1954년 봄에 나타난 갓 태어난 새끼 연어들은 얼마 되지 않아 무려 ‘몰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해 캐나다 정부는 펄프 산업에 중요한 발삼나무를 괴롭히는 가문비나무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미라미치 강에 대규모 약제를 살포했는데, 농약살포용 비행기의 조종사들이 강 위를 비행할 때 농약 분사구를 닫지 않았던 것입니다. 약제 살포가 끝난 이틀 뒤 새끼 연어들을 비롯해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의 물고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그해 봄 부화된 연어 중 살아남은 것은 단 한 마리도 없었고 1년 동안의 산란과정이 모두 허사가 되었습니다.

살충제 살포를 지시한 캐나다 정부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이를 뿌렸던 조종사들은 이러한 위험적 요인들을 미리 숙지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일까요? 단지 해충이라고 생각되는 벌레를 박멸시키기 위해 특정 강에 화학 물질을 노출시키는 것도 개의치 않고 행해진 살포 현장에서 그 해에 태어난 모든 연어가 죽어버린 이상, 벌레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펄프 산업을 지탱하는 발삼나무를 앓게 하는 얄미운 가문비벌레들을 죽이는 것 그리고 상공을 날아다니며 농약을 살포하는 자신의 임무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을 해결하기 위해 애씁니다. 다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해야 해.’ 라는 생각을 한 번씩은 해 본 적 있으시죠? 단지 상황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달리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나중보다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하곤 합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를 살포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러합니다. 저 우글거리는 잡초와 벌레들은 지금 당장 없어져야 할 것이며,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모기와 제초제에도 끄떡없는 ‘슈퍼 잡초’가 생겨납니다. 결국 살충제와 제초제는 의도한 대로 사용되지 않고 도리어 멀쩡한 다른 생물들의 생명을 위험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연어 떼죽음과 유사한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습니다. 또한 피해를 당한 개체들의 종류도 다양함을 넘어 거의 모든 생물들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많습니다. (멀쩡한)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와 균류뿐만 아니라 물과 토양 역시 죽어갔고 이는 장기적으로 순환되었습니다. 살충제가 장기적으로 순환된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 클리어 호수에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성가신’ 각다귀를 없애기 위해 물고기에는 덜 해롭다고 여겨졌던 살충제 DDD를 방제됐습니다. 당연히 각다귀들은 사라졌지만 다음해 겨울이 되자 호수의 농병아리가 갑자기 떼로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호수에 투입된 DDD의 최대 농도는 0.02ppm(ppm:농도를 나타내는 일종의 단위로 100만 분의 1을 의미)이었으나 농병아리의 지방조직에서는 1,600ppm이라는 엄청난 양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작은 유기체에서 점차적으로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을 통해 독극물은 더욱 농축되어 축적된 것입니다. 더욱이 화학물질이 마지막으로 투입된 직후 이 물에서는 DDD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조사 결과 호수에 살고 있는 생물체의 몸 속으로 모조리 흡수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살충제는 오로지 그 영향권 내에 있던 생물들만 죽어가게 하는 것일까요?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이 뿌린 살충제는 결국 인간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DDD를 체내에 흡수시킨 물고기를 낚시해 와선 요리하여 식탁에 올립니다. DDD가 함유돼 있는 물고기를 먹는 셈이죠. 또 하나, 독극물은 먹이사슬의 윗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축적되는 양상을 띱니다. 이는 대표적인 살충제로 거론되는 DDT를 비롯한 다른 화학 물질들과 관련해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로 먹이사슬을 통해 그 성분이 다른 생물체로 계속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닭이나 소가 먹는 식물에 살충제나 제초제 성분이 있다면, 이 닭이 낳은 알과 소가 짜낸 우유에도 화학물질이 들어있습니다. 예를 들면, 건초를 여물로 먹은 소에서 짜낸 우유에는 3ppm 정도의 DDT가 들어 있지만 이 우유를 농축해 만든 버터에서는 65ppm으로 그 수치가 올라갑니다. 비록 포함된 화학 물질이 맨 처음에는 매우 적은 농도라 주변 생물들에 그다지 크게 해를 미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상당한 양으로 농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죠. 우리가 화학물질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누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실을 명확히 알아야 할 이유는,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재앙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정할 때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상황들을 보면 살충제와 제초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학물질을 사용했을 때 비록 ‘앞으로 재앙을 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나를 괴롭히는 성가신 것들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죠. 이에 더해, 살충제나 제초제가 비단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만 적용된다는 건 전혀 틀린 소리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지난 1월, 현지 언론들은 일본의 한 냉동식품 제조회사에서 만든 냉동식품을 먹은 후 복통을 일으킨 환자가 3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는데요, 이 냉동식품들 속에는 진딧물 살충제로 쓰이는 말라티온 성분이 들어 있었습니다.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쓰이는 화학물질들이 인간에게도 충분히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죠. 이러한 특수한 사례 말고도, 홈키파와 에프킬라 등 이름만으로도 친숙한 가정용 살충제 역시 인체에 유해하다며 식약청으로부터 퇴출 조치를 지시받았습니다. 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은 인간에게 천식이나 비염, 두통을 유발하며, 밀폐된 공간에서 과량 노출되거나 어린이들이 마셨을 경우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손떨림과 인지기능 저하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를 직접 뿌리는 사람들의 상황은 더욱 안 좋습니다. 화학물질에 대한 명확한 노출 경험이 없는 사람의 경우 몸 속 화학물질이 평균 5.3~7.4ppm 정도였으나 살충제 공장 노동자의 몸 속에서는 648ppm이나 측정됩니다. 언젠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농약을 도포한 목화씨를 다뤘던 노동자 25명이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폐해를 알았으니 살충제와 제초제의 대안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제초제의 대안으로써 프랭크 에글러 박사가 개발한 ‘선택적 살포’는 자연의 고유한 복원력에 기초를 두는데, 대부분의 관목이 다른 나무의 침입에 강하게 저항한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입니다. 직접 처치를 통해 키 큰 나무들만 제거하고 다른 식생들을 보존합니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특정 식물을 먹이로 하는 곤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주민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독풀인 ‘염소풀’은 이를 먹고 사는 ‘클러매스’라는 딱정벌레를 대량으로 풀어 놓자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사라졌던 목초들과 이로운 식물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곤충들은 자신이 원하는 식물만 먹이로 삼는데 그런 제한적인 식성을 잘 이용한다면 굳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제초제를 아예 없애 버린 마을도 있습니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렌느라는 마을인데요. 이 마을은 20여년 전부터 살충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모든 잡초는 사람들이 직접 뽑아 한쪽에 밀쳐 놓으며 뒤이어 청소차가 이를 거둬가는 식으로 하여 제초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놓고 어떤 것이든 채집하여 먹을 수 있습니다. 혹자는 간편한 제초제를 놔두고 고생을 사서 하는 듯한 행보를 딱하게 여길진 모르겠지만 이러한 고생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살기좋은, 화학 물질의 위험 지역에서 벗어난 마을로 거듭났음을 아무도 부정할 순 없겠습니다.

사람들은 방사능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무서워하지만, 방사능과 맞먹는 혹은 그 이상으로 심각할지도 모르는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선 무감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된 이유는 환경 문제가 우리 일상생활까지 깊이 침투하여 미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보편화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거론한 살충제와 제초제는 환경 문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여러 사례를 살펴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재앙을 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행동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